▲사막 마을, 잔닥 - 마을은 온통 흙색인데 집안은 이렇게 파랗다니! 포도와 마늘과 파를 집 안에서 키우고 있었다.
김성국
단어만 나열하며 말을 걸다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한, 이 집안의 아들인 듯한 남자가 꽃 한 송이를 꺾어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 이름모를 분홍색의 꽃을 받아들자 짙은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너무도 낭만적인 장면이다. 이란 사람들은 다분히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노래의 리듬보다는 노래의 가사에 더 의미를 두고, 일상생활에서도 늘 시의 구절을 인용하길 즐겨 하는 사람들이다.
이란 여행 초기, 시라즈(Shiraz)를 여행 당시 길에서 한 젊은이에게 길을 물었던 적이 있다. 길을 알려주다 말고, 갑자기 '잠시만'이라고 말하며 수첩을 꺼내 방금 떠오른 시상을 종이에 적은 후 친절하게 나머지 길을 알려 주었었던 잘 생긴 이란 젊은이가 문득 떠올랐다.
DJ DOC의 노래를 CD에 구워 선물하자 바로 노랫말을 궁금해 했던 이스파한에서 만났던 미나 가족, 후일 터키와의 국경도시 타브리즈에서 만났던 하니 가족에게서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냥 집 구경만 한 후, 사진만 찍고 나오려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페르시아어 교재를 꺼내, 친구 만들기 부분을 펼쳤고 하고 싶은 말들을 골라, 일일이 손으로 짚으며 가리켰다.
"제 소개를 할게요. 국이구요. 이쪽은 영. 자전거. 테헤란, 무릎, 아파요. 어젯밤. 식당. 잤어요. 이란, 처음. 좋아요. 즐거워요. 고마워요."
단어들만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주욱 나열했을 뿐이었지만, 손짓 발짓 다해가며 애를 쓴 보람이 있었던지 잔뜩 긴장해 있던 그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맘눈(고마워요). 코다하페스(안녕)”
인사를 나누고 그 집을 나와 또 한참을 걸었다. 밖에서 볼 땐 온통 황토색, 진흙 색 밖에 보이지 않던 잔닥이라 불리는 마을.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 보니, 새로운 세상이 이 안에 있었다. 어디선가 아이들 소리가 들려와 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분명히 학교일 것이다.
이번 사막 자전거 여행을 통해, 두 번이나 현지 시골 학교에서 잠을 얻어 잤기에 이란의 학교는 너무나도 친숙한 셈이다. 여자 초등학교였다. 우리를 발견하자 조그마한 운동장에서 뛰놀던,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여자 아이들은 예상대로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치며 물러섰다. 결국 국이는 학교 밖에서 기다리고 영아 혼자서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제일 자신 있게 하는 페르시아어는 다름 아닌 "인자케시 잉글리쉬 바라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나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