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정조대왕 이산의 할아버지인 영조의 무덤에는 야릇한 풍수야사가 드리워져 있다.
이성한
나는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 임금이 자신의 정비와 별거하고 계비인 정순왕후와 나란히 잠들어 있는 '뭔가 이상해 보이는' 이 곳 이 무덤의 풍수야사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이야기인즉슨, 영조는 83세를 누리며 51년 7개월이란 기간 동안 재위했던 조선왕조 최장수 재위 왕으로서 생전에 풍수에 지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지금 '서오릉'의 홍릉 자리에 자신이 죽은 후 묻힐 자리를 택지해 두었다. 그러나 그의 정비인 정성왕후가 일찍 승하하자 먼저 홍릉에 안치하고 나중에 자신이 죽은 후 묻혀 누울 자리를 비워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죽은 자가 산자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가?
정조는 영조가 승하한 후 왕위에 등극하자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인 할아버지 영조의 무덤을 동구릉 능역에다 조성해 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정조의 왕심이 '아비추숭 할배폄하'로 드러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이리라. 그리하여 동구릉의 원릉에 영조는 안치되었으며, 이후 정조임금이 불분명한 사인(死因)으로 승하한 후 정순왕후는 왕위를 승계한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까지 하며 위세를 떨치다가 죽은 후, 영조의 옆자리에 묻히게 되었음을 아이들에게 말해 주었다.
내가 남편의 옆자리인 원비 정성왕후(조강지처) 자리를 계비인 정순왕후 자신이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는 형국으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고 말하니 아이들은 먼저 들렀던 건원릉에서 잡상(어처구니)에 대해 설명을 들어서인지 모두들 하나같이 어처구니 없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끼리끼리 팔짱도 끼고 걸으며 우리는 영조의 원릉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그래도 영,정조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야사가 제법 흥미롭고 인상깊게 남았는지 몇몇 녀석들이 자기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미적미적 거리며 뚫어져라 언덕 위 무덤을 눈으로 끌어들여 가슴 속에 담는 모습이 보인다. 내겐 커다란 보람이요 참을 수 없는 답사여행의 희열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조선왕조 최초의 삼연릉 양식의 무덤인 '경릉'을 향해 걸었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나는 발걸음을 같이 하고 있는 그들에게 한마디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져 보았다.
"바람이 쌀쌀한 가을날에 왕들의 무덤을 살피고 돌아보는 것이 무섭진 않니?"
"아니요, 전혀요! 오래 전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에요!"
정말 우문으로 던져 본 한마디 물음에 상쾌한 답변으로 나를 기분좋게 하려는 듯 배려하여(?) 말해주는 한 꼬마 녀석의 슬기로움이 고마웠고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들이 더 자라고 어른이 돼서 친구들과 함께한 가을날의 왕릉 숲 속 여행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오래도록 떠올리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