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 샘물교회 전경.오마이뉴스 이경태
현지시간 21일 정오(한국시간 21일 오후 4시 30분)가 지나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1명을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탈레반 세력이 AP통신을 통해 "한국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설정한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21일 오전 7시부터 청와대에서 안보관계 장관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주재로 송민순 외교장관과 김장수 국방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탈레반측의 '철군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단 탈레반 대변인이 제시한 '21일 정오'는 상식적으로 철군을 결정하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한이라는 점에서 '철군 시한'이라기 보다는 '협상개시 시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탈레반 측이 정치적 목적, 혹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번 납치사건을 일으켰다면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질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탈레반의 언론플레이나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고, 그들의 의도와 요구를 차분히 파악해서 필요한 대응책을 강구해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제시된 시한이 단순한 엄포만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우선 정확한 정보수집과 상황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2004년 김선일 납치 때도 '파병철회' 요구 거부
현재로선 정부가 탈레반 측의 요구를 수용해 조기 철군을 결정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 같은 납치테러에 굴복해 정부 정책을 변경하는 선례를 남긴다면 이를 노리고 한국인을 납치하는 사건이 빈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이라크에서 피랍, 살해된 '김선일씨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정부는 신속하게 납치단체의 파병철회 요구를 거부했었다. 그 뒤 김선일씨가 처형되는 비디오 영상이 공개돼 큰 충격을 던졌지만, 지금도 납치단체의 요구를 거부한 당시 정부의 결정은 옳았다고 정부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납치단체와의 협상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다. 이 역시 더 많은 유사범죄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석방협상은 아프간 정부나 지방정부, 또는 탈레반에 영향력이 있는 국제기구나 NGO(비정부기구) 등을 통해 전개될 전망이다.
정부는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정부의 생각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것 자체가 납치법들의 전략 수립에 도움을 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피랍자들의 석방 조건으로 '21일 정오까지 철군'을 내걸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서도 아직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납치된 한국인들이 "현재까지는 안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피랍자들과 직접 통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아프간 중앙과 지방정부, 현지에 파병된 동맹군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피랍자들은 현재 당초 납치됐던 가즈니 지역에서 일정 정도 떨어진 곳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국군 철군'이 궁극적 목적일까
중요한 것은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 측의 의도이다. 일단 '한국군 철군'을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납치로 분석된다. 그러나 과연 '철군' 그 자체가 목적인지, 아니면 철군은 겉으로 내건 요구이고 정작 달성하려는 목적이 따로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됐던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소속 대니얼 마스트로쟈코모 기자의 경우에는 탈레반 포로 3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2주 만에 풀려났다. 당시 탈레반 측은 이탈리아군의 철수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탈레반 공격중지, 탈레반 포로 3명을 조건으로 내걸었었는데 궁극적 목적은 '철군'이 아닌 '포로석방'에 있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지난해 3월 미군기지에서 공사를 하던 독일기업에 고용돼 있던 알바니아인 4명을 처형하는 등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납치한 외국인을 살해한 경우도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공격으로 권좌에서 축출된 탈레반은 최근 아프간 정부의 실정을 틈타 급속히 세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8000명과 나토 주도의 국제치안유지군(ISAF) 3만2000명 등 총 4만3000명의 외국군대 축출을 목적으로 테러와 납치를 자행하고 있다.
2004년 총 6건에 불과하던 자살폭탄테러는 2005년 21건, 2006년 136건으로 늘어났으며 외국인 기술자와 구호단체 요원, 언론인 등을 수시로 납치해왔다. 19일 한국인들 납치에 앞서 18일에는 독일인 2명이 납치됐다. 탈레반 대변인은 독일 정부에도 이들의 석방조건으로 '철군'을 요구했다.
이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자행된 납치인 만큼 그 해결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앞으로 인질들의 생명을 놓고 피를 말리는 협상이 예상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