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우리 부부는 3년 전 전북 장수의 백화산 자락으로 귀농했다. 주변에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곳이 없고 물이 깨끗해 친환경으로 농사짓기 좋았기 때문이다.조계환
세상에 농사짓는 일처럼 멋진 일이 또 있을까? 위에서 억지로 시키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작은 밭뙈기라도 스스로 기획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나간다. 일기의 변화며 밭가는 방법, 작물의 시기별 특성을 배우며 땅과 함께 호흡하는 과정이 새록새록 재미있다.
물론 처음엔 육체노동에 익숙해지는 게 힘들었지만 요령이 생기니 적응이 됐다. 도시에 있을 때는 자동차 본네트 한번 열어본 적 없던 사람이 이젠 농기계가 고장 나면 각종 연장들을 챙겨들고 덤벼든다. '일'의 주인이 된다는 것, 게다가 그 일이 많은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소중한 일이라는 점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일은 일반 관행농에 비해 몇 배는 힘들지만, 풀은 부직포를 깔아서 잡고, 벌레는 천적으로 잡고, 각종 병균은 땅심을 키우고 배수 관리를 열심히 해서 그나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한미FTA 협상 체결까지 된 농촌 현실은 정말 참담하다. 주변에 농사짓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도시 나가 돈버는 자식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나 품일 나가 받는 삯으로 근근이 버티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도농 교류'니 '녹색 체험 마을'이니 하면서 농촌을 관광지화하는, 무늬만 좋은 정책으로 두번 세번 농촌을 죽인다. 결론적으로 경쟁력 없는 농업은 포기하고 농촌을 관광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농사짓는 농민들한테 가야할 보조금이 이렇게 관광 사업 추진하는 사람들이나 소위 일부 경쟁력 있는 농민들한테만 집중된다. 당연히 농촌의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대규모' 친환경 농업, '미션 임파서블'
한미FTA가 체결된 이후 언론은 'FTA 위기, 친환경 농업으로 넘는다' 류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내용인 즉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 농업 경쟁력이 더더욱 없어질 것이므로 '대규모'의 '친환경 농업'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친환경으로 한 달만 농사지어 봐도 안다. 규모를 크게 해서는 절대로 친환경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불가능하다.
시기별로 병충해가 오면 농약으로 해결하고, 작물 넣기 전에 화학비료 조금 뿌리고, 제초제로 쉽게 풀을 잡는 일반 관행농과 달리 친환경 농업은 몇 배의 공이 들어간다. 소규모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나서서 넓은 땅을 인증 받아 농산물을 판다는 소릴 들으면 일단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설사 친환경 농사를 규모를 크게 한다고 치자. 현재 발표된 한미FTA 협상에 따르면, 토마토의 경우 5년 후면 관세가 완전 철폐된다. 경쟁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이젠 아예 유럽과도 FTA를 한다고 한다. 까다로운 국제 유기농 기준에 맞게 키운 유럽 농산물의 경우 우리 친환경 농산물보다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
결국 투자를 많이 해서 친환경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다 한들, 10년을 못 가서 빚더미에 앉게 될 것이 뻔하다. 귀농해서 보니 주변에 빚 없는 농사꾼은 단 한명도 못 봤다. 항상 이러저러한 어설픈 환상에 속아 농민들은 피땀 흘려 일만 하고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로 살아가고 있다.
농촌과 도시민의 가족 만들기, 이거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