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행진에서 '이경해는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 자유무역이 농민들을 죽인다'고 쓴 피켓을 든 외국인.오마이뉴스 김연기
무엇보다 카길은 사기업인 자신들의 이익을 미국 정부의 정책을 통해 구현하는 데 재능을 보였다. 브루스터 닌은 "카길은 항상 공공복지와 연관 있는 선한 시민"처럼 행동하지만 "카길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거물 농부들만 상대해 왔다"고 지적한다.
카길 수뇌부들은 미국의 농업(무역) 정책의 얼개를 직접 구상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대니얼 암스터츠 전 카길 부회장이다. 그는 1987년 GATT 농업협상에 제출됐던 미국의 예외 없는 관세화 방안의 초안을 작성했다고 알려졌고 최근에는 이라크 재건사업 농업부문 단장으로 활동했다.
카길의 홍보 부서 사장이던 윌리엄 피어스는 1971년 닉슨 정부의 무역협상 특별대표였으며 어니스트 미섹 카길 전 회장은 1998년 클린턴 정부의 대통령수출위원회에 위촉됐다.
그는 2003년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자결한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상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WTO 협상은 카길 협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그늘, 그 때도 카길이 있었다
농산물 수입국 1·2위라는 불명예를 누리고 있는 일본과 한국은 카길에게 가장 큰 동아시아 시장이다. 이 두 나라에서 카길은 전후 식량 원조를 통해 급속하게 성장했다.
카길은 한국에서 6·25전쟁 이후 식량원조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챙겼는데 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최대 부패사건이었던 '삼분폭리사건'에서 삼성과 손잡은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삼성은 원조 밀의 수입업자와 가공업자에 선정돼 엄청난 수익을 남겼는데 카길이 바로 삼성의 대행업자였던 것.
1981년 수입 개시 이래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과 가격하락으로 인한 국내시장 붕괴위협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국시장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도 미국육류수출연합 덕분이었다. 한때 카길의 한국사무소의 대표는 미국육류수출연합의 한국 대표를 겸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은 현대 제분제빵산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쌀을 주식으로 하던 일본인들이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밀가루 빵을 선호하게 된 데는 미국의 식량원조, 즉 카길과 무관하지 않다. 카길 재팬은 일본에서 밀과 보리, 쌀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최초의 외국업체로 기록됐다.
이외에도 카길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남미 곡물 기지로, 인도는 글로벌 소금 공급지로 접수했다.
또 '미래의 고객' 중국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중국의 WTO 가입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카길코리아는 이미 중국의 사료와 비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세계식량체계는 카길의 손 안에
미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세계의 밥상을 지배하게 된 카길은 카길의, 카길에 의한, 카길을 위한 세계 식량 체계를 꿈꾼다.
"카길은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인산비료를 생산한다. 그 비료로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대두를 생산하고, 이 대두는 식품과 기름으로 가공된다. 가공된 대두 상품은 태국으로 출하되어 닭고기 사료로 쓰이고, 이 닭고기는 다시 가공 처리되거나 조리된 후 포장되어 일본과 유럽의 슈퍼마켓으로 출하된다." - 카길의 중역 짐 프로코판코의 연설 중에서
브루스터 닌은 "카길은 '세계적 규모로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서구 경제학의 고전적인 이데올로기를 추종한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카길은 식량 주권이나 식량 안보 같은 개념보다는 합리적인 거래,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미국산에 비해 두세 배나 비싼 자국의 쇠고기를 지키겠다는 한국인들의 주장을 카길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문제는 카길이 말하는 것처럼 식량과 농업이 합리적인 거래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1988년 식량난을 겪고 있던 북한과 카길이 아연과 밀 2000톤을 구상무역형태로 계약했다가 북한의 아연궤가 준비되지 않자 운송 중이던 수출선을 공해상에서 돌려 다른 나라에 수출한 사건은 카길의 '합리성'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예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하지만 6월 4일 만난 김기용 카길코리아 회장은 이같은 지적들에 대해 모두 오해이며 관점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카길이 농업을 중심으로 142년 동안 성장해 오면서도 외부에 노출이 별로 안 되면서 생긴 오해일 뿐이며, 카길은 선량한 기업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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