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 안내도에 참배객이 써놓은 것으로 보이는 열사 묘소 위치이정환
게다가 그들의 약력과 삶을 기록한 자주색 표지판도 아직 세워지지 않은 묘소가 많아, 일일이 비석을 확인해야 구별이 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강연임, 금진현, 김미영, 박기상, 오경환, 이경환, 이정미, 이종대, 임혜란, 정낙현, 조용술, 주우길, 최종운, 최종진, 홍성엽 등 15개 묘소에는 '열사 표지판'이 세워져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고, 이중 안내도에 나타난 9개 묘소까지도 비석만 세워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안내도에 2003년 이후 안장 현황이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아, 민족민주열사 묘역이라 지칭하기에는 허술한 구석이 엿보였다. 강지연, 권재혁, 김남식, 김미영, 김진수, 김태환, 박상윤, 엄성준, 오덕환, 이정미, 이종대, 이형관, 전용철, 전응재, 제종철, 조용술, 홍성엽 등 적어도 17개 열사 묘소가 묘역 안내도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최소 98명의 민족민주인사가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일반인들이 안장 현황을 정확히 전함으로써 참배를 원하는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조속한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잊혀지는 열사가 하나 두 늘어난다는 것은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가 백골단 진압으로 사망한 김귀정 열사(왼쪽). 오른쪽은 1986년 6월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콘크리트 덩어리를 매달고 숨진 채 발견된 김성수 열사 묘소의 방명록.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이정환
"박종철 열사가 누구죠?"
어느새 ‘박종철’이란 이름도 잊혀지고 있었다. 여자 친구가 노동운동을 반대한다는 최수범씨도 "전태일은 알지만, 박종철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친구 안성규씨도 마찬가지였다.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의 말도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지난 1월 13일에 종철이 모교인 부산 혜광고에서 추모제를 열었어요. 박종철 인권상을 받은 사람들도 행사에 참석했는데, 자기들끼리 '박종철이 누구냐'고 수군거리는 걸 들었어요. 안타까웠죠. 금강산에 간 적이 있는데, 지도원이라고 하죠? 젊은 지도원들이 박종철을 더 잘 알고 있더라구요. 누구 잘못이겠어요. 우리 모두의 잘못이죠."
6월 민주항쟁 20년. 우리는 무엇을 기념해야 할까. 인천지역 노래패 ‘철의 노동자’에서 활동하는 황승미씨의 말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기념한다는 모임이나 사업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현재 문제들과 맞물리도록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합니다. 6월 항쟁 20년이 '비석처럼' 기념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 | | 박종철 열사는 누구? | | | |
| | ▲ 박종철 열사 가묘 | ⓒ이정환 | 온 국민들의 마음에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지핀 박종철. 그는 1965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저 모범생으로 보였던 박종철은 1984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자신을 투신한다.
활발한 학생회 활동으로 3학년에 이르러서는 과 학생회장에 선출됐고, 1986년 4월에는 청계 피복노조 합법성 쟁취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1987년 1월 14일, 갑자기 하숙집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체포된 박종철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 중인 박종운의 거취를 알아내려는 잔혹한 고문에 의해 오전 11시 20분 숨지고 만다.
독재 정권은 단순 쇼크사로 사건을 축소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치안본부장의 발표가 부검의 소견과 다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고문 의혹'이 확산되자, 경찰은 고문사를 공식 인정하고 관련 수사관 2인을 구속했다.
하지만 공범 3명이 더 있다는 자백을 받고도 수사를 종결하려던 사실이 그 해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 이로써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은 반독재 민주화투쟁으로 확산,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된다.
이와 관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올해 발간한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저자 김정남) 서문에서 함세웅 신부는 '박종철과 6월'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희생을 감수했던 숭고한 물결 속에 박종철이 있었습니다. 대학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벗어 던지고 민주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모진 고문 속에서도 동지들을 지키다 홀로 세상을 등진 그의 죽음으로부터 6월 민주항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쟁 기간 내내 박종철은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 이정환 | | | | |
| | 모란공원 '열사'들의 평균 나이는? | | | | 1일 경기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표지판이 있는 묘소를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은 평균 몇 년의 생을 이 땅에서 보냈을까. 최근 세상을 떠난 분들을 포함했는데도, 결과는 '청년'의 나이였다. 34세. 어쩌면 우리는 각자 절반 정도의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은 그 명단(가나다 순, 괄호 안은 사망 당시 나이).
강민호(25) 강희철(41) 고재욱(21) 고정자(미상) 권희정(23) 김경숙(21) 김기욱(39) 김남식(81) 김말룡(69) 김병곤(37) 김상원(33) 김성수(18) 김시자(35) 김영자(50) 김종하(28) 김진균(67) 김진수(22) 김처칠(35) 김태환(39) 남현진(21) 류정하(25) 문송면(15) 문익환(76) 민병일(39) 박동진(42) 박래전(25) 박영진(26) 박종철(22) 배동복(36) 석광수(30) 성순희(55) 송광영(27) 엄성준(35) 우종원(23) 이경환(19) 이덕인(28) 이재식(37) 이형관(25) 임혜란(28) 전태일(22) 정성범(31) 제종철(35) 조영래(43) 조정식(25) 조현식(33) 진철원(20) 천덕명(38) 천세용(20) 최명아(35) 최웅(29) 최응현(21) 최종길(42) 한경석(40) 한상근(26) 한희철(22) 이상 79명. / 이정환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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