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생가 여유당 모습. 평일임에도 방문객이 많다.강기희
길을 떠난다. 돌아옴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은 피부로 스며드는 바람부터 감지해야 한다. 예정된 여행이 아니라면 느껴지는 감촉에 따라 어디로 갈 것인가 결정해도 늦지 않다. 이럴 땐 함께 길 떠날 도반이 없다 해도 섭섭하지 않다.
여행의 참맛은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 발견한다. 약속 장소로 허겁지겁 달려가거나 오지 않은 사람 기다리다 보면 조인 신발끈이 오히려 여행의 발목을 죄는 경우 허다하다. 시끌벅적하게 떠나는 여행은 수학여행 한 번으로 족하다. 여행은 바람처럼 떠났다가 바람처럼 돌아와야 제 맛이다.
큰 스승을 만나러 가는 길, 그의 책 한 권 챙기는 건 예의
지난 23일(금) 아침,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의 감촉은 부드러웠다. 간헐적으로 옷깃을 파고드는 꽃바람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날은 거친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여행지가 좋다. 그곳에 평온한 바람 불어주는 호수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번 길 떠남은 마현마을이다. 적어도 그 마을에 가면 기대하는 모든 것이 충족된다. 마현마을은 내 영혼의 쉼터와 같은 곳이다. 그 마을에 가면 느껴지는 바람조차 평화롭다. 훌쩍 떠났다가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시간 발길을 돌리면 되니 돌아오는 부담도 없다.
서울 도심의 언저리에 있는 마을인 마현마을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마현마을은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생(生), 거(居), 사(死)를 한 곳이라 하여 다산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여행자가 다산과 인연이 있다면 그동안 몇 차례 생가를 찾았던 일과 몇 해 전 마현마을에서 우연히 들렀던 집이 다산의 후손 집이었으며, 마침 그 집은 대학 후배의 처가집이었기도 했던 인연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막걸리를 주고 받으며 밤을 보내고 있을 즈음 후배의 장모께서 다산의 후손이라며 어린 시절 책을 뜯어 도배를 했던 기억을 풀어 놓았다. 후배의 장모는 그 책이 아마 선조인 다산 선생께서 만든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막걸리잔을 비우더니 "에휴, 당시 사는 게 다 그랬어요"하고 말았다.
마현마을에 가려면 적어도 그의 저서인 <목민심서> 한 권쯤은 챙겨가야 한다. 그것이 마현마을을 찾는 예의이다. 흔히들 목민심서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읽는 책으로 알고 있지만 기실 이 책은 백성이 읽어야 한다.
백성으로서 '목민(牧民)'이란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대통령이나 시장 군수를 향해 회초리를 들 수 없기 때문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에 선비의 길 떠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행장 중에 갖출 의복이나 도구 같은 것은 옛 것을 그대로 쓰되 새로 만들지 말라. 수행하는 사람이 가진 것이 많아서는 안 된다. 선비가 길 떠남에 있어 이부자리와 속옷 그리고 고작해야 책 한 수레쯤 싣고 가면 될 것이다. - 목민심서 '치장(治裝)'
길 떠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정(淨)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떠들썩한 여행은 귓전을 어지럽히는 바람만 느끼지만 홀로 떠난 여행에서는 바람에 마음을 씻을 줄 알아야 한다. 요란하게 치장하고 떠나는 여행보다는 책 몇 권을 챙겨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간혹 '여행지에까지 무슨 책이람'하고 투덜거리는 이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이 평소에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길 떠나면서 먹을 것부터 챙기는 부모 밑엔 역시 군것질부터 하려는 자식 있기 마련인 이치다.
서울에서 덕소 방향으로 길 머리를 잡아 팔당댐을 지나면 마현마을 초입새가 나온다. 버스를 이용하면 그곳에서 내려 걷는다 해도 먼 거리는 아니다.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작은 고개가 나온다. 그곳이 마현고개다.
고개를 내려가면 다산의 생가가 있는 유적지가 먼저 객을 맞이한다. 유적지는 제법 규모를 자랑한다. 생가 인근에 공사중인 실학박물관까지 완공되면 여행길은 더 지체된다. 다산의 시작품으로 조성된 문화의 거리를 지나 다산문화관과 기념관을 둘러본다. 다산의 삶과 생애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기념관을 나서면 책을 펼쳐들고 앉아 있는 다산을 만날 수 있다. 펼쳐든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지만 여행자는 목민심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다산의 체취를 느껴보기 위해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으로 간다.
당호를 '여유'라 지은 연유에 대해 다산은 그의 회고록인 <자찬묘지명>에 "겨울 내를 건너고 이웃이 두렵다는 의미를 따서 지었다"라고 적었다. 이웃이 두려웠다는 다산의 고백에서 여행자는 그의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 하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