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문학동네
갓 구운 돌의 표면처럼 깊은 빛깔의 녹색 표지에 얼굴을 묻고, 새 책의 향내를 맡았다.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돌의 내력>은 권위적인 성경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 누가복음 19장 40절
오쿠이즈미 히카루(51)는 1985년 <땅의 새, 바다의 물고기들>을 첫 소설로 하여 20여년 간 작품활동을 해왔다. 일본에서 1993년 <돌의 내력>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는데, 이 작품이 문학동네를 통해 올해 1월 한국에서 번역출간되었다.
<돌의 내력>은 '강가의 돌 하나에도 우주의 전 과정이 새겨져 있다'는 비장하고도 보편적인 단언으로 첫 문장을 연다. 돌 하나로 압축된 짜임새가 허무맹랑한 무용담이나 판타지의 곁가지로 빠지지 않고 비교적 단순하고 뚜렷한 메시지 하나로 집중된다. 이는 단순히, 작가가 장인정신으로 오랫동안 작품을 매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 마나세가 일본의 침략 전쟁, 태평양 전쟁이라는 역사와 연루된다면, 둘째 아들 다카아키는 1968년에서 1969년 정점에 달했던 일본의 학생운동 '전공투운동'과 연루된다. 첫째 아들 히로아키의 죽음 이후 넋을 잃고 암석수집에만 몰두하는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듯 방치됐던 둘째 아들 다카아키는 무장 학생운동에 깊숙이 관여해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정부군에 의해 사살된다.
태평양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마나세는 돌을 수집한다. 그러나 자신을 따라 돌에 관심을 가졌던 큰 아들이 산 속 동굴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아내는 이혼한 뒤 미치게 되면서 가정은 파탄을 맞는다. 둘째 아들 역시 죽어버리자 일련의 사건들에 깔린 원인을 찾기 위해 동굴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나세는 태평양 전쟁 당시 자신이 죽였던 병사의 기억과 조우한다. <돌의 내력>은 이 가운데에 개인과 역사의 트라우마를 진중하게 짚어낸다.
아크플롯과 안티플롯의 사이, 둘째 아들
"아버지도 전쟁 때에는 사람을 죽였을 거 아냐?"
"그래, 그런 얘기니?"
"……"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니잖니."
"전쟁 중이야.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전쟁 중이야. 아버지가 모르고 있는 것뿐이지."
"……."
"자연의 본질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과학자라고 할 수 있어.그저 돌만 다듬고 있는다고 해서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그것으로 기쁨을 얻는다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아버지처럼 세계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인간들이 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원흉이란 것을 알아야 해."
"……."
"각오는 돼 있어.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어."
아들은 죽으려 하고 있었다.
절망한 마나세가 가정을 떠나 홀로 돌 연구에 침잠하던 어느 날, 다카아키는 무장투쟁 중에 사람을 죽이고 경찰에 쫓기다가 아버지의 집에 찾아온다. 첫째 아들 히로아키가 돌을 관찰하던 책상 근처에서 다카아키 역시 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죽은 아들의 망령 속에 살던 아버지 마나세는 처음으로, 다카아키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성공하는 시나리오는 보통 아크플롯 형식이라고 한다. 고전적인 기승전결을 갖추어 아귀가 딱 들어맞는 결론으로 관객을 납득시켜야 잘 팔린다는 거다. 아크플롯의 반대쪽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식의 안티플롯이 있고, 아크플롯과 안티플롯의 중간에 미니플롯이 있다. 미니플롯은 비교적 닫힌 구조에 단일한 주인공의 욕망을 위주로 풀어가지만, 여운을 강하게 남겨 현대인들의 인기를 끄는 플롯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화려한 특수효과와 볼거리, 이야기를 찍어내는 기능적인 주조틀을 탄탄하게 갖춘 데 반해, 상업적이라는 평을 듣는 것은, 아크플롯 내에서 복잡다단한 시대현실과 자국 혹은 할리우드 상업 시스템이 위치한 기득권 구조를 충실히 성찰하지 않고 쉬운 생략을 택하기 때문이다. 짠하고 펼쳐지는 요란하고도 작위적인 스토리가 관객의 진짜 현실을 놓치고 있다면, 관객이 작품 앞에서 '거짓말같은 한 판의 서커스'라고 느끼는 건 당연하다.
전후의 상처를 다루는 <돌의 내력>의 진짜 가치는, 단순히 "일본인도 전쟁의 피해자야"라는 넋두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작품을 밀도 있게 만드는 건, 이를 바꾸기 위한 흐름에 뛰어들어 목숨을 바치는 둘째아들 다카아키가 내는 불협화음이다. 아버지 마나세의 서사에 '굴러 들어와 박힌 돌'처럼 이질적으로 끼어드는 둘째 아들 다카아키의 서사가 '아크플롯'에 균열을 가하고 다시 굳히며 이상한 부조화를 이룬다. 이를 통해 소설은, 돌의 표면에 가라앉은 자연의 기록처럼 녹록찮아진다.
'진부한 이야기로 말하기, 진부한 이야기를 안쪽에서 비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