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환자와 가족들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국내 최초의 '담배소송'에서 25일 패소, 즉각 항소할 계획이어서 흡연으로 인한 폐암 발병률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데 흡연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담배소송 판결이 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재판부의 판결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가지 점은 인정하게 되었다.
하나는 재판부의 판결이 최소한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결에 동의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자기가 담배를 펴서 암에 걸려놓고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재판부가 대충 판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판결문 전문을 읽어보면 담배에 대한 교과서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내용이 풍부하고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담배와 폐암의 관련성에 대한 역학적 사실들이 잘못 해석되어 있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사법부의 판결은 판결대로 존중하되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은 지적해서 바로잡는 것이 해당 분야 전문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역학연구 해석에 오류가 있다면 이 땅의 역학자들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나서 10명만 다치면, 부상 원인은 '개인의 취약성'?
@BRI@연구 결과가 가장 잘못 해석된 부분은 "역학적 연구결과를 개인하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흡연이 폐암을 유발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그러나 개인에게 흡연이 폐암을 유발했는지를 확정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확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담배를 피운 사람에서 폐암이 발생하면 담배가 원인일 가능성이 90%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또 "전체 흡연자 중 10~15%에게만 폐암이 발생한다"는 역학 연구 해석도 잘못됐다. 이 부분은 흡연자 중 유전적으로 취약한 일부에서만 폐암이 발생하기 때문에 흡연을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판결문 원문을 들여다보자.
"발암물질에 동일하게 노출되더라도 암에 걸리는 양상은 매우 다양하며, 쉽게 암에 걸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안전하게 피해가는 사람도 있다(판결 각주 : 전체 흡연자 중 10~15%에게만 폐암이 발생하고, 전체 폐암 환자의 10~15%는 비흡연자인 사실을 앞서 보았다)…(중략)…개인의 유전적 소인을 감안하지 않은 채 특정 발암 환경에의 노출만으로 그 개인에게 폐암이 발병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이는 한 마디로 비유를 들자면 "100명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른 차량과 충돌한 후 10명이 다쳤는데 나머지 90명은 멀쩡하기 때문에 부상의 원인을 사고로 볼 수 없다"라고 판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100명 중에 나름대로 취약한 10명이 다쳤겠지만 부상의 원인은 너무도 자명하다.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테니까.
흡연자 중 10%가 우연히 폐암 걸릴 확률은
우리나라에서 폐암의 기본 발생률은 인구 10만명 당 15명 정도이다(여성의 폐암 발생률). 담배가 폐암을 유발하지 않는다면 흡연자 100명 중에 폐암환자는 0.015명 있어야 한다. 사람을 나눌 수는 없을 테니까 결국 흡연자 100명 중에는 폐암 환자가 하나도 없거나 많아야 한 명 정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흡연자의 10%에서 폐암이 발생했다면 무조건 흡연이 폐암의 원인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흡연자 100명 중에 10명의 폐암환자가 나올 확률은 (15/100000)을 10번 곱한 값이고, 쉽게 얘기하면 제로이다.
재판부는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개인에서 흡연과 폐암의 관계를 도출할 수 없는 이유로 사용한 것이다. 이 세상에 어떤 발암물질도 노출된 사람의 10% 이상에서 암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모르겠다. 혹시 하나쯤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