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와인버그위키피디아
와인버그 책을 번역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를 엄습한 첫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스티븐 와인버그(74·Steven Weinberg·텍사스대), 그가 누구던가. 무엇보다 그는 내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을 만든 사람이다. 그 공로로 1979년 노벨상을 받았다.
1967년 발표한 논문 'A model of leptons(경입자에 대한 모형)'은 지금까지 무려 6100여회 인용돼 기초과학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로 꼽힌다.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를 들라면, 네덜란드 유트레이트 대학의 트후프트(G.t Hooft), 미 프린스턴의 위튼(E. Witten)과 함께 와인버그가 포함된다.
와인버그는 또한 많은 명저를 남겼는데, 우주의 기원에 관한 대중서적인 <처음 3분간(The first 3 minutes)>을 포함해서 대학원생 필독서인 <중력과 우주론(Gravitation and cosmology)> 등이 유명하다. 내가 박사과정에 있을 때 나온 <양자장론(The quantum theory of fields)>은 입자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바이블'로 통한다. 요컨대, 지금 인류가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들여다보는 기본적인 틀거리를 제공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와인버그이다.
와인버그 저작들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물리학자답지 않은 수려한 문장과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명쾌함 때문이다. 야사 하이페츠가 아직까지도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에서 영원한 '강박관념'으로 남아 있다면, 와인버그 또한 물리학계 전체를 통틀어 그런 위치에 있지 않을까 한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게 되면 세상을 보는 방법과 느낌이 사뭇 다르게 마련인데, 와인버그는 대체 어떤 심정으로, 어떤 기분으로 글을 썼는지 내가 짐작할 수 있을까? 내 두려움의 요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경지에 이른 거장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까
@BRI@1993년에 나온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의 꿈(Dreams of a final theory)>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우선, '표면적으로' 이 책은 '초전도 초대형 충돌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SSC) 건설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SSC는 1983년부터 계획된 프로젝트로서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초대형 입자 가속기이다.
올해 11월 가동되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거대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LHC)가 사상 최대 규모인데 둘레 27km, 충돌하는 양성자 빔의 에너지는 양성자 질량의 1만4천배, 비용은 약 2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SSC는 그 둘레가 무려 84km, 충돌하는 양성자 빔 에너지가 양성자 질량의 4만배, 비용은 약 8조원으로 추정됐다.
이른바 '거대과학'(big science)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라 할 만하다. 와인버그는 이 프로젝트를 앞장서서 가장 열성적으로 옹호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러나 SSC는 1993년 미 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폐기됐다.
이 책에서 와인버그는 왜 물리학자들이 그런 엄청난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지, 그 '문명사'적 의의를 설파하고 있다. 자연의 근본법칙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여기 오기까지 어떤 여정들을 거쳐 왔는지 매우 상세하게 적고 있다.
특히 와인버그는 자연에 궁극의 법칙, 즉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것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들을 원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이론체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한다. 와인버그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의 이론들 사이에는 매우 독특한 (중요성의 경중이 아닌) 위계질서가 존재하는데 한 이론이 다른 이론을 설명하는, 설명의 방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방향은 한 곳으로 일정하게 수렴하는 듯이 보이며 그 끝에 최종이론이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이를 위해 와인버그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일반상대론, 끈 이론, 우주론은 물론 생물학, 철학, 인류학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특유의 박학다식함을 과시한다. 수식 하나 없이 소위 '말발'로만 그 방대한 내용을 소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다.
그러나 이 책이 유명해진 것은 이런 내용적 충실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와인버그의 입장은 줄곧 '환원주의'(reductionism)와 '실재론자'(realist)적 관점으로 일관하고 있다.
환원주의와 실재론자의 관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