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공원 3>의 한 장면.영화홈페이지
그런 할리우드가 이제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얘기를 다 했는지 영화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영화도 리메이크 하는가 하면 그들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유럽의 온갖 신화들까지 동원되고 있다.
미국이 '과거'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점에서만큼은 아마 할리우드도 한국을 무척이나 부러워할 것 같다. 우리가 살아온 나날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해주는 이야기들, 어쩌면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만 같은 그 감성들이 사실은 '백만 불짜리' 코드인 것이다.
다시 우리 얘기를 하자면, 한류가 앞으로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미국과는 반대로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현재'와 '미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 같은 과학자들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지금 현대의 문명은 '과학문명' 외에는 더 나은 별명이 없어 보인다. 기초과학이란 것이 복잡한 수식과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들의 복합체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 대자연과 우주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의 통합체라고 했을 때,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끝없는 탐구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향유할 이야깃거리, 즉 스토리의 근간을 이룰 것이 분명하다.
지식보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공허함이 채워지면 한류의 장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다큐멘터리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다. 영국 BBC나 일본 NHK가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의 존재이유를 한류의 새로운 동력에서만 찾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기초학문으로서 그 자체의 존재의의가 있다. 사실 나는 물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이 발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실제 연구를 하다보면 가장 막히는 부분이 바로 물리적 스토리의 재구성이다.
공식이나 이론을 어느 정도 따라가는 것은 정상적인 정규교육 하에서 가능한 일이지만, 새로운 물리상황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새롭게 만들어 내는 데에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인문학적 풍토가 큰 도움이 된다. 아인슈타인이 강조했듯이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사회는 기초과학이나 인문학이 배부른 인간들의 향유물이며, '기본'이 귀찮거나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정부조차도 그 긴급함과 절박함, 그 직접적인 파급효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런 '전통'은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다.
조선조 500년은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장 정교하고도 완벽에 가까운 기록문화를 가졌던 시기이다. 한글과 조선왕조실록, 프랑스가 보관중인 외규장각 의궤 등만 봐도 불과 몇 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했는지, 그리고 그 기본에 얼마나 많은 국가적 역량을 투입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조선이 서양과학을 제대로만 받아들였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문명을 이루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자주적 근대화의 실패와 식민의 역사가 모든 과거와의 단절을 종용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본'에 충실하며 학문을 숭상했던 조선의 정신까지 내다버려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에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팔아먹는 게 한류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류가 유행한 그 근본에는 아시아적 가치의 재발견이라는 공감대가 큰 역할을 한 만큼 바람직한 한류는 흐름이 아닌 소통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중심주의나 한건주의 등 지금까지 보였던 문제점들을 극복하면서 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전환기의 한류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그 핵심 콘텐츠를 체계적이고 대규모적으로 '생산'해야 하며 바로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자연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획기적인 양적·질적 팽창이 시급하다.
정부가 한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버려진 근본적인 생산동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땅에 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아직껏 국가적인 사업으로서의 학문진흥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던 점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한류의 시작을 가능케 했던 것이 사회 민주화에 따른 폭발적인 창작욕구의 분출이었다면, 한류의 재점화를 위한 신형엔진의 역할은 아마도 21세기판 집현전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기사를 쓴 이종필 기자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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