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환자분과 함께 진료순서를 기다리시는 아버지김혜원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친정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쉽게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삼년 전부터 자신이 둔 물건을 찾지 못한다거나 했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일종의 건망증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아버지가 몰고 다니시는 자동차 여기 저기에 접촉사고의 흔적이 늘어가고, 차를 가지고 나가셨다가도 길을 잘못 들거나 헤매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해서 예사로 볼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저 역시 최근 들어 아버지가 몰고 다니시는 차의 여기 저기에 접촉사고 흔적이 흉하게 드러나 있던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
방금 했던 말을 되묻고 되묻는 아버지에게 "장난 그만하세요. 치매예요? 왜 그러세요"라며 장난삼아 놀렸던 자식들로서는 가슴 철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형제들과 의논한 끝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아 오신 엄마의 경험담과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이상 행동 등을 미루어 보건대 치매가 의심이 되었던 때문이지요.
문제는 특별히 치매라는 질병에 나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를 어떻게 병원에 모시고 가며, 어떻게 검사에 협조를 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치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병원 검진을 거부하실 것이고, 자식들에게 불같이 화부터 내실 것이니 말입니다.
결국 자식들과 엄마는 아버지를 잠깐 속이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앓으셨던 뇌졸중에 대한 재검을 포함해서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종합검진을 받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치매를 진단하기 위한 검사는 하루 종일 진행되었습니다. 혈액검사, 뇌파, 초음파, 골밀도, MRI, MRA등 기계를 이용한 정밀 검사는 물론 2시간 여에 걸친 심리검사까지 치매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이 다양한 만큼 진단을 위한 검사 역시 세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정밀한 검사 결과 아버지는 치매 1기를 넘어서고 있다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우측 전뇌가 축소되어 있었으며 우측 뇌로 혈액을 공급해야 하는 혈관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동안은 발견되지 않았던 질병인 당뇨와 갑상선기능저하 역시 치매를 급격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병증으로 치매를 치료하거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치료가 시급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치매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