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6 11:57최종 업데이트 24.09.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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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로 인해 나무들이 처참히 잘려나가고 있다. 자료사진. ⓒ 최병성


잠재적 산업 스파이쯤으로 간주하는 것일까? 헌법보다 더 근엄한 그 어떠한 보위가 필요한 영업활동을 하길래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속하는 알권리를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뭉개려 드는지? 전천후 방패막이처럼 들이대는 영업비밀! 우리나라도 선진국인데 이제 좀 그만하지 싶다.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살기 충분했던 곳을 파헤치고 무엇인가를 조성한다는데 그게 어떤 성격의 사업인지, 어느 곳에 조성할 요량인지, 그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므로.

이를테면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을 벌일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는데, 그 일정 규모란 것이 뒷산에 나무 몇 그루를 베거나, 근처에 작은 시설이 하나 들어서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다. 작게는 5000㎡이지만 크게는 축구장 100개 이상의 규모이거나, 지도가 바뀔 지경이거나, 지형이 크게 변모하면서 거대 시설이 들어서거나, 없던 도로가 널찍하게 뚫리거나 하는 규모다.

그 과정에서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물질을 심각하게 내뿜거나 온실가스를 펑펑 쏟아내거나 하는 등의 사안이다. 그런데 삽을 뜨기 전까지는 개발사업 예정지였다는 사실을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했다는 것에 분개한다면 정당한 분노와 항변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면 명백한 법 위반이다. 환경영향평가법에 "환경영향평가 등의 대상이 되는 계획 또는 사업에 대하여 충분한 정보 제공을 함으로써 환경영향평가 등의 과정에 주민들이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분명히 법에 따라 개발사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그렇다면 법에서 제시하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행위만 했을 것이다. 법에서 말한 것처럼 충분한 정보제공을 통해 주민들이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원활한 참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 아닐 것이다.

형식적으로 개발사업에 대해 일간신문과 지역신문 귀퉁이 어딘가에 환경영향평가서 열람 방법을 공고하고, 열람 또한 관내 해당 장소에 가서 직접 열람하는 수밖에 없으니, 그 많은 양을 한장 한장 펼쳐가며 읽어내야만 그 사업이 어디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벌어지는 사업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과연 충분한 정보제공일까?

디지털 시대에 해당 게시 장소를 직접 방문하여 대체로 1000페이지 넘는 방대한 평가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봐야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낡은 행정을 전통을 존중하는 것과 일치시키는 억지처럼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환경영향평가정보지원시스템인가?

온라인으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환경영향평가정보지원시스템 운영 지침에 따라 인터넷 사이트에 환경영향평가서 등의 정보를 등록, 공개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군사상의 기밀 보호 등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 그리고 평가서 등에 해당 사업의 특별한 영업비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그 사유가 타당한 경우에 한해 비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작동은 다르다.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사업은 평가서가 공개되고 있지 않다. 환경영향평가 자체가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인데, 평가가 진행 중인 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 반려되거나 취하된 사업 역시 원문이 공개되고 있지 않다.

환경영향평가가 다 끝난 다음에야 평가서 내용을 볼 수 있다면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난 것이다. 정보제공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대한 의견 수렴 기회 자체가 차단되는 것이다.

게다가 평가서 원문은 저작권 정책에 따라 열람 및 인쇄만 가능하고, 원문 제공 동의 사업만 내려받을 수 있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영업비밀이란 사유로 사업자는 비공개를 요청할 수 있는데, 그 사유가 타당한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신뢰할 만한 기준이 없다.

공적 자산인 자연환경을 개발하는 행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자료에 저작권이란 명분을 붙이는 것도 문제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저작권에서 말하는 지식재산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공공의 지식으로서의 위상을 지녀야 하지만 간과되고 있다.

환경부 장관이 환경영향평가서를 협의('동의, 조건부 동의, 부동의'가 '협의, 조건부 협의, 재검토'란 용어로 바뀌어 조금 혼동된다)할 때, 검토를 위해 전문기관, 이를테면 한국환경연구원, 국립생태원, 국립생물자원관, 국립환경과학원 등의 의견을 듣는데, 이들 전문기관이 어떠한 의견을 냈는지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사업이나 제주제2공항건설사업에 대해 검토기관들은 부정적인 검토 의견을 냈지만, 환경부 장관은 조건부 협의(동의) 의견을 냈다. 검토기관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환경부 독단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전문기관의 검토 의견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국회를 통해 검토기관의 검토 의견을 전달받기 전에 소송으로 문제제기하고 승소하기 전에는 검토기관 의견을 일반인들이 확인할 수 없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난개발사업을 인해 쓰러지고 망가진 멸종위기종들과 그들의 서식처가 묘지가 되지 않도록 환경영향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 녹색연합


먼저 정보 공개되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영향평가 실시 전 단계에서 소통의 기능과 환경영향평가 내용에 대한 기록으로 사업에 대한 정보, 환경 현황, 영향 예측 및 평가 등 전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인허가 행정기관이나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환경부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동등하게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

환경정보의 공개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올바른 판단을 유도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각 결정이 내려지는 단계마다 그 결정 사항에 대해 공개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될 때 과정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가능해진다.

자연환경 현황 조사의 경우 기초 조사 데이터를 포함해 조사 결과를 상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사를 위한 측정 기계 설치 장소, 환경영향과 경관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자료도 함께 공개하면서 정보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비공개 정보를 최소화하도록 비공개 사유나 타당성에 대해 신뢰할 만한 기준과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비공개되는 정보도 사업자의 자의적인 요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공개 관련 기준을 수립하는 별도의 상설위원회를 두어 결정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도 지방자치단체 등에 특정 정보 공개 여부 등을 심의하기 위한 정보공개심의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정보공개에 관한 기준 수립 등을 심의 조정하기 위하여 상설위원회인 정보공개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알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법률에서 명확히 뒷받침하도록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법개정 서명하러가기! https://bit.ly/3TcetKM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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