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근로자대표 선임서, 연서명은 있지만 형식적으로 선출한 것에 불과
하은성
그렇게 선출된 근로자대표 김00 과장은 아무런 상의도 없이 휴일대체, 연차휴가대체 등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고 6개월 만에 퇴사했다. 개탄스러운 것은 합의의 기간이 2023년 말, 1년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대표가 합의 기간 도중 퇴사하였더라도 '근로자대표가 퇴사할 시 근로자대표의 자격으로 사업장과 합의한 내용에 대해 효력이 없다'는 등의 별도 규정이 없다면 근로자대표로서 합의한 연차휴가대체 합의는 유효하다는 것이 현재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이다(근로기준정책과-2660, 2021. 8. 31). 결국 사업주는 '근로자들 중 사용자대표'만 형식적으로 세우면 연차휴가·휴일 등 수많은 권리를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다.
#이야기 셋, 처분문서의 증명력? 노동법의 탄생 과정을 보라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노동관계의 실질"로 판단하는 실질주의 원칙을 천명하였다. 이는 물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한 판결의 판시사항이지만, 이러한 취지를 고려한다면 사기‧강박 또는 기망에 의해 문서를 작성하였는지를 기계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노동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여 노동자 권리보호의 관점에서 사안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흔히들 인용하는 "처분문서의 증명력"판결은 노동관계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대등한 양 당사자'를 전제하는 민법과 '사용종속관계를' 전제하는 노동법은 법이 실제로 구현되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처분문서의 증명력 판결은 민사판결로서 대등한 두 당사자 사이의 계약을 전제로 나온 법리이다. 양 당사자 사이의 어떠한 우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로 작성한 계약서의 효력은 사기·강박으로 인한 작성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이다. 그러므로 이 판결은 사법(私法)적 관계, 대등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최소한의 근로기준을 정하고 사업주에게 준수할 것을 강제한 것으로서, 공법(公法)적인 성격을 가지는 법이다. 공법이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율하거나 국가 기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인 반면, 사법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말한다.
결국, 국가가 노동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시민법의 계약자유의 원칙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업주의 우월한 지위에 의해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노동부가 진정 성립된 문서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을 원칙으로 전제하여 사안을 판단하는 것은 시민법의 원리를 수정한 노동법의 탄생 연혁에도 반하는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 청와대 노동자들의 목소리
청와대 노동자들은 당초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것' 만으로도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다단계 하도급구조'와 최종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의도적 방관, 그리고 고용노동부의 면죄부는 자부심을 자괴감으로 바꿔버렸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요구'라고 명명하기도 민망할만큼 소박하다. 도둑맞은 명절 상여금을 되찾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 휴일근로수당을 받으며,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고, 무엇보다 1년 단기 계약직 신분을 벗어나 고용의 안정감을 찾고 진짜 사장에게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