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선생이 태어난 생가(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吐里)
김종신
평생 마음으로만 사귀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 머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결국 정신적 사귐으로 끝나고 마는 것인지요? 인간의 세상사에 좋지 않은 일이 많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걸릴 것이 없음인데, 유독 이 점이 제일 한스러운 일입니다. 선생께서 한 번 의춘(의령)으로 오시면 쌓인 회포를 풀 날을 매번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오신다는 소식이 없으니, 이 또한 하늘의 처분에 모두 맡겨야 하겠습니다. (주석 2)
출사와 시국관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했거니와, 남명이 1564년 퇴계에게 다소 비판적인 편지를 띄웠다. 유생들의 부패타락상에 퇴계의 침묵에 대한 항의였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늘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정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진리를 담론하여 이름을 훔치고 세상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 상처를 입게 되고,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니, 아마도 선생 같은 장로(長老)께서 꾸짖어 그만 두게 하시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석 3)
이에 대한 퇴계의 답신이다.
보내주신 글월에 "이름을 훔치고 세상을 속인다"는 말씀은 유독 그대만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도 역시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고 억제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마음 가짐이 본래부터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훔치려고 하는 자는 말할 것도 못 됩니다. 홀로 생각건대, 하늘이 본성을 내려주어 사람들은 모두 선을 좋아합니다. 사람의 영재 가운데서 성심으로 학문을 원하는 사람이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내가 하늘과 성인의 문정(門庭)에서 죄를 얻는 것이 이미 심하거늘,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이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훔치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주석 4)
남명은 이에 대해 회신을 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식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 시속이 숭상하는 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나귀 가죽에 기린의 모형을 뒤집어씌운 것 같은 고질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그러해 혹세는 면하는데 급급하고 있으니, 크게 어진 이가 있더라도 구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실로 사문의 종장인 사람이 오로지 상달만 주로하고, 하달을 궁구하지 않아 구제하기 어려운 습속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그와 더불어 처신을 왕복하여 논란을 했지만, 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공은 지금 폐단을 구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석 5)
주석
1> 윤사순, <한국성리학의 전개와 특징>, <한국사상의 심층연구>, 189쪽, 우석, 1982.
2> 강정화, 앞의 책, 125~126쪽.
3> <퇴계에게 드림>, <교감국역 남명집>
4> <퇴계전서>, 권 10, <답조전중(答曺傳仲)>.
5> <교감국역 남명집>, <오자강에게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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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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