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쓴 글.
최은영
어르신들 글쓰기 수업을 많이 했지만 다들 본인 이야기 쓰는 것만 집중했다고, 이렇게 체험활동 홍보글을 직접 쓰시겠다고 자원하신 분들은 처음 봤다고, 어떻게 보면 내 이야기 쓰는 것보다 홍보 글이 훨씬 어려운데 글쓰기 안 해 보신 분들이 어쩜 이리 용기 있으시냐며 수업을 시작했다.
아부가 아니라 진짜였다. 재밌게 체험하고 사진 찍고 오면 끝날 일을 스스로 복잡하게 만드신 분들이 아닌가. 어르신들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우아한 분들'이라는 방점을 찍었다.
"명품 휘감아서 나오는 건 우아함이 아니라 돈자랑이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어르신들의 우아함은 안 해 본 일을 기꺼이 도전하는 태도거든요. 여기 간사님 연락 받고 그 우아하신 분들이 궁금했어요. 저도 오늘 수업하면서 어르신들 태도 많이 배우고 갈게요."
그렇게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한글이 어려우신 한 분께는 나랑 간사님이 번갈아가며 자료를 읽어드렸다. 어르신이 생각났던 말들을 옮겨 적어드리기도 했다. 같이 웃다가, 머리 아프게 고민했다가, 한 줄 쓰고 두 줄 지웠다가 하면서 90분이 훌쩍 흘렀다.
"아이고, 머리에서 불이 나는 거 같고만요. 대학은 가본 적도 없는데 대학생 된 거 같아요."
수업 끝나고 나가는데 한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들 맞장구 치시며 웃으셨다. 혹시 너무 어렵게 한 건 아닐까 걱정하던 내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렇게 받아주셔서 고맙다고, 진짜 우아하신 분들이라고 나도 한 번 더 박수를 드렸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모습, 이렇게 써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 써놓은 거 보고 혼자 뿌듯해 하는 모습 등이 스쳐 지나갔다. 우아함의 사전적 의미는 '고상하며 기품이 있고 아름답다'이고 '고상하다'는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인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처음 배우느라 어려운 것에 짜증 한 번 없이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하는 그 노력이 높은 품위 아닐까? 악필이라고 부끄러워 하면서도 끝까지 채워보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분들께 '우아함'을 강조하고 수업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간사님의 일거리 만들기를 응원한다. 일거리를 만든 간사님을 위해 다음 수업에는 아이템을 더 구상해 가야겠다. 결과물이 나왔을 때 어르신들이 더 뿌듯해 할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 각 기관의 팸플릿을 한참 검색했다. 그 일거리가 어르신들의 우아함을 더 빛나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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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가본 적도 없는데 대학생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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