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25km지만 올라야 할 해발 고도가 1400m인 첫 날 나폴레옹 코스. 순례길에 다시 나선다 해도 이 코스만큼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사람으로서 국경을 넘은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팔등에 소름이 돋는다.
김진우
프랑스 루트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트에서 출발한다. 첫날, 거리는 25km지만 올라야 할 해발 고도가 1400m다. 길바닥에 코를 박을 것 같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끝도 없이 올라가야 한다. 순례길에 다시 나선다 해도 이 코스만큼은 피하고 싶다. 만약 이 길을 또 걷기로 결심한다면 이유는 단 하나, 걸어서 국경을 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나는 12시간을 걸어 스페인에 도착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 내가 스페인으로 넘어왔는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같은 길, 산, 나무, 함께 걸었던 순례자들이 있었다. 론세스바에스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축하했다. 그 순간 우리가 국경을 넘어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분단된 나라의 남쪽에 위치해 섬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온 나만이, 안 그래도 터질 것 같은 가슴에 혼자만의 이유까지 껴안고 훌쩍거렸다.
기차로, 자동차로, 버스로 국경을 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걸어서 내 나라의 국경을 넘는다는 것, 한반도에 살고 있는 7800만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남한에 살고 있는 50대 후반인 나에게는 불가능, 전쟁, 죽음, 감옥 등의 단어가 생각난다. 나는 지금도 피레네 산맥을 넘었던 그날을 생각하면 팔등에 소름이 돋는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국경이 어떤 곳에서는 가족을 생이별하게 하는 철벽이 되고, 그게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남아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못 본 척하며 분단과 갈등에서 떨어지는 단물을 빨아먹는 국내외 세력이 있는 곳이 내 나라라는 걸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동서독 분단 시절을 기억하는 독일 친구들, 최근 브렉시트를 통해 다른 이유로 국경을 인식하기 시작한 영국 친구들과 내 첫날의 감정을 나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국적, 인종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공통된 관심사를 통해 몇 시간 만에 끈끈한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순례길을 떠난다면 포르투갈 루트를 선택하고 싶다. 100km라 5일이면 걸을 수 있고, 바다를 끼고 있으며, 프랑스 루트보다 훨씬 조용하다는 다양한 매력에 더해, 걸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경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대의 순환을 경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