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숲속 책방(필름/Portra400)7년 전 모습. 지금은 왼쪽 하단부에 화목 난로가 있다.
안사을
사북 항쟁과 관련하여 융합 수업을 구성하면서 반드시 이곳을 아이들과 함께 오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항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곳이지만 정선의 자연과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강 작가님과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고도 싶었고, 내가 얻었던 작은 평화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도 싶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도, 첩첩산중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기를 원했다.
그런데 올해 2월 1차 사전답사 때도, 6월 2차 사전답사 때도, 힘든 항암치료 중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잃지 않고 나를 맞이해주시던 그가 8월에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부랴부랴 학교 관리자에게 상황을 알리고 예정에 없던 3차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홀로 남겨진 유진아 작가님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차마 몰랐지만,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든 바꾸든 어쨌든 그분을 직접 대면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짧은 만남에서도 수척해진 얼굴 너머로 몇 차례나 슬픔이 오고 갔지만 유 작가님은 감사하게도 일정을 취소하지 않아도 된다며 귀한 마음을 내어주셨다. 내가 먼저 쉼을 제안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사람이 난 자리에 북적북적 아이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그냥 이곳에서의 삶 이야기를 가감 없이 잠시 해주십사 부탁도 드렸다. 그러한 시간이 유 작가님에게도 채움과 다독임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발 담그고 물 건너 책방으로 간 아이들
기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학년토론실'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큰 배낭에 짐을 찔러넣으며 탄식과 비명을 번갈아 질렀다. 이윽고 10월 13일 금요일, 아이들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4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정선군 북평면 졸드루야영장에 첫 짐을 내렸다. 시간이 부족하여 그늘막(타프) 치는 실습을 완벽하게 못 했기에 여기저기서 "선생님! 선생님!"을 불러대는 아이들과 함께 잘 곳을 꾸리다 보니 금세 밤이 되었다.
둘째 날 아침, 그러니까 타지에서의 첫 아침 아이들은 예외 없이 모두 졸린 눈을 비비며 6시 반 점호에 참여했다. 시간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며 귀가 닳도록 당부를 들어서인지 취사와 짐 정리까지 완벽하게 시간 안에 마쳤다. 학생과 교사를 실은 버스는 정선군 화암면 북동리에 그들을 내려주기 위해 곡예 운전을 했다. 베테랑 기사였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좁고 구불거리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