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양승진의 묘 (순직공무원묘역 12호)
임재근
다음으로 순직공무원묘역 12호에 양승진 선생님이 안장되어 계십니다. 양 선생님은 학교 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분이었습니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학교 앞에서 교통 정리를 맡았습니다.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위해서였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담당해서 청소를 번쩍번쩍 빛나게 할 정도였습니다. 부임하는 학교마다 상조회장도 여러 번 맡으셨습니다. 양지고에서 상조회장을 맡을 때는 비정규직 기간제교사, 조리사, 행정실 직원까지 상조회에 포함하며 두루두루 화합을 도모하던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취미는 텃밭 가꾸기였습니다. 단원고에서도 학교 뒤 텃밭에 상추, 감자, 쑥갓, 마늘, 상추, 고추 등을 키우셨습니다. 이렇게 키운 작물을 동료 교사나 학생에게 나눠줬고요. 동료 교사들은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먹을 것을 사 오신 분'으로 회상했습니다. 유도와 씨름으로 단련된 탄탄한 체격이었지만 '풍채에 안 어울리게 자상한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으로 학생들은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양승진 선생님은 천생 선생님이었습니다. 학생들을 직접 대하는 게 좋다며 한사코 여러 승진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매년 스승의 날에 선정되던 교육부장관상 대상자에 올라도 "나는 승진에 관심이 없어. 받으나 안 받으나 내가 변하는 것은 없고, 그 상이 더 필요한 훌륭한 사람이 받았으면 한다"며 손을 저었습니다. 해외 연수 기회도 다른 이에게 양보하는 분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승진 선생님이 승진에 관심이 없다"며 농담을 건넸지만, 그저 허허 웃고 마는 성격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지킨 교육 철학은 "늘 학생들과 함께하는 스승의 모습을 잃지 말자"였습니다. 평소에 "학생 없이는 교사가 없고, 학생의 미래가 없으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자주 이야기하곤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뱃멀미를 심하게 했고 배를 잘 못 탔지만, 막상 수학여행이 다가오자 학생처럼 좋아했습니다. 참사가 발생하고 선생님은 구명조끼를 학생에게 벗어주고, 목이 터져라 '갑판에 나오라'고 외치며 배 안으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죽더라도 학생들 살리고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