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문학 오디세이아- 광인의 복화술과 텍스트의 오르가슴> 표지
르몽드코리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년)는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화가일 것이다. 37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가 사후 자신이이처럼 대단한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을 생전에 알았다면 짐작건대 자살하지 않았을 터이고 (아니면 그보다 늦게 자살했을까?) 인류에게 더 많은 작품을 남겼겠다.
가문 대대로 목사를 지낸 집안에서 태어난 고흐는 애초에 그림보다는 신앙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적인 신앙 행태를 보여, 곤봉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고 겨울에 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가 하면 침대를 마다하고 침대 옆 돌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등 고행을 자초했다.
그러나 운명은(혹은 신은) 그를 바울과 같은 전도자가 아닌 화가의 길로 인도했다. 그것도 대단한 화가로. 그림은 고흐에게 일종의 소명이었다. 믿음의 연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믿음과 그 믿음의 대상인 신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그렇게 열렬한 신앙을 가진 그가 불안에 휩싸이고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다소 모순적이다.
성서 대신 붓을 들어서였을까. 단정할 수 없지만 그렇진 않은 듯하다. 그의 개인적 광기엔 시대의 무게가 얹혀 있다. 고흐는 자본주의가 발흥하는 문턱에서 분열한 근대인의 전형이다.
신이 지배한 서구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년)같은 사상가가 막 신의 죽음을 선언할 무렵에 고흐는 여전히 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린다. 죽음을 선고받기 이전에 신이 이미 떠나버려 옷자락만 허공에 뜬 깃발처럼 펄럭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적극적 멜랑콜리'를 말한다.
"지금,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나는 이따금 그런 그림들이 있는 고향이 그리워. (…) 향수병에 굴복하는 대신 나는 적극적인 멜랑콜리를 결심했다. 달리 말하면, 우울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절망적인 멜랑콜리보다 바라고 추구하고 얻으려고 노력하는 멜랑콜리를 더 중시하겠다는 뜻이야." - <빈센트 반 고흐> , 라이너 메츠거 저, 하지은・장주미 역, 57p, 마로니에북스, 2018
이 적극적 멜랑콜리를 중시하는 삶의 전략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년)은 우울증을 "멜랑콜리에서 매력을 뺀 것"이라고 정의했다. 손택의 정의에 따르면 멜랑콜리엔 매력이 들어있다. 고흐가 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절망적 멜랑콜리는 손택의 우울증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적극적 멜랑콜리는 멜랑콜리에서 매력을 곶감 빼먹듯 뽑아내는 작업이 되는 셈이다. 매력이 소진하며 멜랑콜리는 우울증을 거쳐 광기로 휘발한다.
문학 또한 고흐의 창작처럼 산출된다. 텍스트에 매력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는 멜랑콜리와 대면하고 대결한다. 문학에서 또한 예술에서 매력은, 재능 감각 등 여러 어휘로 설명하는 작가의 역량과 연결되어 작품 수준을 결정 짓는다. 분명한 것은 멜랑콜리를 제거한 '매력'만으로는 더는 예술을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