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스케치
정무훈
첼로에 사용되는 나무는 악기의 부위 별로 3~4종을 사용하는데, 앞판에는 진동 특성이 좋은 캐나다의 가문비나무(spruce), 뒤판과 옆판 그리고 넥에는 견고하고 아름다운 노르웨이 단풍나무(maple), 또한 지판에는 검고 단단한 스리랑카 흑단(ebony) 그리고 블록으로는 하와이 버드나무(willow)나 가문비나무 등이 사용된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원시림 숲에서 100년 이상 살아온 나무는 어느 날 갑자기 먹먹함을 나이테에 품고 커다란 배에 실려 정든 숲을 떠나게 된다.
다른 나무 친구들은 캐나다, 노르웨이, 스리랑카, 하와이에서 저마다의 고향의 이야기를 품고 숲을 떠나 거친 바다를 건너게 된다. 원목은 새로운 악기로 탄생하기 위해 수많은 여정을 거친다. 원목 회사에 도착한 나무는 뒤틀림 없이 단단해지기 위해 바닷물에 담가져 파도 소리를 깊게 품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몇 해의 자연 건조를 거치면서 숲에 대한 기억이 나무 향과 나무 결로 짙어진다. 비로소 악기가 될 준비가 된 나무는 장인에 손에 닿는다. 장인은 악기를 디자인하고 세심한 공정을 거쳐 악기를 만들어 간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나무들은 합쳐져 섬세하고 개성 있는 소리를 지닌 악기가 된다.
어떤 연주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악기는 저마다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수없이 주인이 바뀌는 악기도 있다. 부서지고 파손되어 버려지는 악기도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콘서트홀에서 주인공이 되는 악기도 있다. 외딴 방에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악기가 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연주하는 길거리 악사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어떤 악기는 주인을 만나지 못해 하루하루 먼지가 쌓여간다.
악기를 고르다가 내가 악기를 고를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인지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악기는 저마다 특별한 소리를 품고 있다. 숨겨진 악기의 소리를 이끌어 내주는 연주자를 만날 때 비로소 악기는 진정한 음악이 된다. 내가 악기라면 어떤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타인의 소리에 얼마나 깊이 공명하고 있을까?
수많은 첼로들 속에서 나만의 첼로를 운명처럼 만났다. 나는 선택한 첼로의 독특한 소리를 찾아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첼로의 선율이 파장이 되고 주파수가 되어 우주 끝까지 퍼져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첼로와 누군가와의 소중한 만남을 꿈꾼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서로 특별한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시구가 떠오르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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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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