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코 다 가마가 묻혔던 성 프란시스 성당
Widerstand
종교 뿐만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도 케랄라는 독특하죠. 케랄라에서는 1957년 공산당이 선거를 통해 주 정부를 장악합니다. 선거를 통해 공산당이 지방정부를 장악한 것은 세계 최초였습니다. 여전히 공산주의 세력은 선거보다 혁명을 통한 집권을 말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물론 중앙정부의 탄압이 이어졌죠. 하지만 성평등, 노동권 증진, 사회의 탈종교화,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공산당이 주장한 의제는 케랄라 사회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진보정당인 공산당과 민주/개혁파 정당인 국민의회가 번갈아 집권을 이어간 케랄라는 인도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으로 성장했죠.
특히 의료 정책과 교육 정책에서 케랄라 주는 큰 성과를 보였습니다. 평균 문해율이 70% 선인 인도에서 케랄라 주의 문해율은 90%를 넘습니다. 2011년 인도 인간 개발 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에 따르면, 케랄라 주민의 기대 수명은 74세로 인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여성의 인구가 비정상적으로 적은 인도에서, 케랄라만큼은 남성 1,000명당 여성 1,084명이라는 높은 성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케랄라 모델'은 그 자체로 연구의 대상이었습니다. 실제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야 센(Amartya Sen)의 주된 연구 주제이기도 했죠. 경제 지표는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기대수명이나 문해율 등에서는 선진국에 준하는 성적을 내는 케랄라 주는 분명 독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