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프랑스 리슐리에국립도서관에서 반환되기 전 외규장각의궤를 안고 다소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필자. 이번에 서울에서 다시 만난 이 멋진 '파리의 연인'과의 데이트는 한결 마음 편하게 이루어졌다.
유종필
이 서적들은 병인양요(1866년) 때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군함에 약탈당한 사실만 전해올 뿐 정확한 행방을 모르던 중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1929~2011) 박사에 의해 발견되어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서적들로 인해 지금 우리나라의 고속철이 프랑스산 TGV(떼제베)이다.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걸까.
이 서적들이 1975년 존재를 드러낸 이래 반환 문제가 한동안 한불 외교 현안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가 고속철을 도입하기로 한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TGV를 팔기 위해 방한했다. 이때 외규장각 의궤 297 책의 반환을 약속하고 그중 맛보기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라는 책 한 권을 가져왔는데, 국립도서관의 여성 사서 2명이 책을 가지고 따라왔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청와대에서 두 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반환식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사서들이 책을 못 내놓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프랑스 측에 초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외무장관이 장시간 면담 끝에 전달식 몇 분 전에야 사서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나타나 마지못해 책을 내놓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사서들은 귀국 후 책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내는 초강수를 두었고, 프랑스 언론들은 대통령을 비판하고 사서들을 지지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TGV는 팔고 의궤 반환 약속은 지키지 않아 한국 측의 원망을 샀다. 그 후 숱한 양국 교섭 끝에 145년 만인 2011년 프랑스 국내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영구대여 형식을 빌어 사실상 한국에 반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