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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시행 중인 연명의료의향서도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서울대학병원 내과 전문의 허대석 교수의 의학 에세이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에 따르면, 서울대학병원에서 최근 사망한 암 환자 317명 가운데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직접 작성한 경우는 단 1%에 불과하며, 95%는 '가족이 대리 결정'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4%는 의사결정은 본인이 했지만 가족이 대리 서명한 경우입니다. 회복될 수 없는 중병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결정조차 본인이 내릴 수 없는 현실에서, 안락사가 시행된다면 어떨까요. 가족의 장벽에 겹겹이 둘러싸여 더더욱 본인의 의사는 배제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같은 책에는 보라매병원에서 사망한 환자 165명 가운데 심폐소생술 거부서(DNR)를 작성한 사람 중 가족이 없었던 한 명(행려환자)만 본인이었고, 나머지는 배우자(27.3%), 자녀(50.3%), 부모(3%) 등 가족이 작성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시행의 맹점이라고 할까요? 이 또한 가족 중심의 집단문화가 의식의 수면 아래 작용하는 한국적 괴리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구체적 내용은 다음 시간에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렇게 실상은 본인이 아닌 가족의 결정으로 안락사가 시행되었다고 했을 때 그 결과에서 오는 죄책감과 상실감, 자괴감 등 유족들의 뒤늦은 후회와 혼란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해 8월 26일,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고인의 아내는 1년이 지났음에도 남편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이 그런 방식으로 가는 바람에 슬픔조차 오롯할 수 없다면서. 제 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후기에 썼듯이 순리에 따른 죽음의 상처가 한 줄기 아픔을 남긴다면 자연을 거스르는 죽음은 열창처럼 유족의 가슴을 사방 헤집는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한 본인의 선택이었고 남게 될 가족들을 오히려 위로하며 안락사를 했음에도 유족들의 상처가 쉬 아물지 않고 있는 거지요. 이런 상황에서 명분만 본인의 결정일 뿐, 가족들이 떠밀다시피 가족의 일원을 안락사하게 했다면 당사자들은 물론, 사회적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안락사, 조력사에 관한 논의, 다음 회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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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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