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밥
정누리
두 번째 자취다. 이번에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따로 살 때가 왔음을 우리 가족 모두가 직감했을 뿐이다. 내년이면 벌써 28살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갑갑했던 일상. 이제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혼자만의 삶을 살고 싶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취도 여러 번 해볼수록 만만하다. 절대 처음부터 많은 도구를 사지 않는다. 난 심지어 드라이기도 사지 않았다. 헬스장 가서 씻고 올 것이기 때문에. 짐이 늘어날수록 털어야 할 먼지도 늘어난다. 무드등, 커튼, 귀여운 인형은 나중 얘기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기껏해야 세제, 휴지, 건조대 뿐이다.
이 과정에서 엄마아빠와 다퉜다. 이삿짐에 '전기밥솥'을 넣느냐 마느냐로 싸웠다. 2년 전이랑 똑같다. 난 여전히 전기밥솥 거부파다. 여태까지 가마솥이나 냄비로도 밥 잘 지어먹었는데, 왜 굳이 기계를 하나 더 들이냐는 게 내 주장이고, 엄마는 언제까지 그런 데 시간을 쓸 거냐며 효율적으로 살란다.
으으으, 왠지 모를 거부감. 그러나 엄마가 이겼다. 나의 부엌 한 켠에 대포알 같은 전기 밥솥이 들어섰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신도시 며느리 집에 놀러 온 할머니가 이런 맘일까. 밥솥의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마솥 밥은 쌀을 6시간 정도 불려 놓고, 한번 끓을 때까지 기다린 뒤, 그 다음 중불로 15분, 약불로 15분, 어느정도 된 것 같으면 뜸을 10분 들이면 끝이다. 그러나 요놈의 전기밥솥은 냉정하게 버튼 몇 개만 띡 붙어있다.
먼저 안의 솥을 꺼낸다. 솥 안쪽에 눈금이 붙어있다. 쌀컵수와 물높이? 눈금만큼 쌀을 부으라는 건가? 쌀을 탈탈탈 쏟는다. 이렇게 많이 부어야 한다고? 이러고 나니 물 부을 공간이 없다. 어쨌건 남은 눈금까지 물을 붓는다. 쌀이 3/4, 물이 1/4가 된 것 같다. 영 이상하지만, 백미 취사를 누른다. 단 5분 만에 모든 일이 끝났다. 간편하긴 하군.
가마솥이냐 전기밥솥이냐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