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만 시인의 시집
걷는사람
시를 읽어 볼까요. 만약 제가 결혼하지 않았고, 아내와 이십여 년이라는 기간을 함께 살아오지 않았다면, 이 시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가 /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 줄 몰랐다'라고 말하는 얘기를 그냥 흘렸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짐작만 할 뿐,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습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족이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한 집에서 같이 먹고사는 부모와 아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에게 누구와 누구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겠습니까.
중요성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관계가 중요하고 어떤 관계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나와 가장 밀접하게 생활하고,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의지하고 지지해줄 가족을 생각한다면, 한 여자의 남편인 저로서 단연코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기대합니다.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끝끝내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는 저일 것이기에.
가족이 주는 따뜻함은 대체 불가능한 것
이것은 '누구를 의지한다'라는 말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이나 아내보다 때에 따라선 아이들이 더 의지가 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능력 등이 부족한 남편은 아내에게 큰 의지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라도(경제력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이겠죠.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삶의 여러 부분 중 하나일 뿐입니다. 경제적인 능력 부족 등으로 원망을 한 소쿠리 안겨다 줄 수는 있겠지만, 시인이 말하는 저 따뜻함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주는 따뜻함만큼은 그 누구의,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저는 시 낭독회에서 다양한 노래를 부릅니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는데 부르지 못하는 노래 하나가 있습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릅니다. 제 삶 같기 때문입니다.
아니 아직 노래처럼 다 살아내지는 못했지만, 내 삶도 저 노래처럼 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할 것 같은 제 아내와 저의 연(緣)도 (누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자연스럽게 끊어질 것이고, 그 상실감을 미리 짐작한다면 참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오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중에서
그래서일까요. 저에게 이 시가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너희 아버지가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 줄 몰랐다'라는 어머니의 말과 함께 '우리는 다 모였으나 아버지만큼 따뜻했을까'라는 화자의 담담한 고백은 제 마음속에서 그 무엇보다 진득하게 공명합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하상만 시인은 ...
2005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간장』 등이 있으며, 다수의 교양서를 발간했습니다. 시인은 교원 문학상, 김장생문학상 대상, 김구용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세종도서 문학나눔, 독서신문 등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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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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