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마트에서는 포장재 없는 채소와 과일 그리고 비건 가공식품을 쉽게 살 수 있다.
최미연
물론 이 호기심이 때때로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일면식 없는 이들이 대뜸 '채소도 고통받지 않냐'는 식의 어디서부터 대화의 접점을 맞춰 나가야 할지 모르는 무례함을 취하면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고 매번 지친다.
이 질문은 대체로 다른 생명체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라기보다 '채식'을 한다는 상대의 도덕성이란 게 아니꼽다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야 이전에 비해 채식산업이 많이 활발해지며 그에 대한 인식도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 눈에 띄게 변하는 매년 날씨로 인해 기후위기를 예민하게 실감하는 이들은 더욱 채식을 자주 실천하고자 한다.
도시의 대형마트 한켠에 비건 코너가 따로 생기는가 하면 편의점에서도 '동물'성 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콩으로 만든 술안주나 아이스크림이 들어와 접근성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현재 거주하는 베를린은 워낙 비건 친화적인 도시기에 오히려 비건 옵션이 없는 식당이라고 하면 게으르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한번은 단체로 식사를 하는 자리에 갔는데 닭칼국수 전문집이었다. 나 말고도 미래의 채식을 할지 모르는 다른 이를 위해 '배려의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면 했지만 나 스스로를 '배려해달라'는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하는 때였다. 일행중에 누군가가 '그러고 보니 미연이가 먹을게 마땅치 않네' 하면서 닭칼국수 안에 들어있던 삶아진 감자와 사리들을 내 그릇에 덜어주었다.
챙겨주는 마음이니 그때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사회성을 발휘하고 오는 날이면 마음이 처참해지거나 며칠 악몽을 꾸기도 했다. 상대가 그렇게까지 배려해준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 스스로의 선택이 보장받는 사회나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채식인으로 자유럽게 살기 위해
"고기 들어간 국물도 안 먹어?"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상대의 배려 유무를 떠나 나에게 느끼게 될 거리감이 두려워 '있으면 먹는다'는 말로 대응하곤 했다. 실제로 육류를 안 먹으면서도 최근 몇 년 전까지 평양냉면을 즐겨 먹곤 하던 내 얘기를 듣고 '그럼 너는 진짜 채식을 하는 게 아니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압도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선 내에서의 선택적 채식이 누군가에게는 가짜 채식이 되었다.
스스로 안에서의 윤리들이 충돌하면서도 어떤 부분에는 스위치를 꺼놓아야지만 사회적 여건이 허락하는 내에서 채식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나의 이 유연한 태도가 어느 정도 지인들을 삶에서 붙드는 데 유리하리란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 타협과 실패의 경험이 내 안에 누적되는 것이 결코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고 그래서 나는 이곳 독일로 이사 왔다.
꼭 비건이 되어야만 비건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식사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제안'하면 될 일이다. 한 끼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채식'도 식용이니까.
주변에 채식하는 이가 있다면 혹은 없더라도 어딘가에 묻고 찾아보고 이 무궁무진한 비건의 세계를 누리자! 이 재미 나만 누릴 수 없기에 여러분은 '그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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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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