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로 공사 모습
우 이사
내가 처음에 이장직을 맡겠다고 마음먹은 건, 마을에서 생산되는 밤을 가공하겠다는 내용의 기획서로 우리 마을이 예비마을기업으로 선정됐고, 이를 계기로 마을에 협동조합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을기업 활동은 2021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마을이 예비마을기업으로 선정되고, 마을에 협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절반 정도는 당시의 박 이장 체제로는 마을의 변화가 힘들지 않을까 판단했다. 하지만 관성이라는 물리법칙이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터라, 내가 이장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았다.
어쨌든 투표를 통해 이장으로 선출되고 나니, 이장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실 이장 업무가 많았다기보다 그동안 마을의 해묵은 민원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1년을 결산하는 마을 '대동회'에서 발표하려고 2021년에 시작되고 종결된 사업들을 정리해 보니, 종결 사업은 무려 29개였다. 한 달에 평균 2.4건의 사업을 진행하고 마무리한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 2021년에 종결된 사업 중 가장 많은 건, 총 29건 중 13건으로 배수로·세천 정비였다. 비가 많이 오면 항상 위험해지는 곳부터 민원을 해결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위험하지만 계속 방치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에 미친 폭우가 우리 마을을 들쑤시고 지나갔을 때 두 집의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한 집은 닭장에 허리까지 물이 차서 닭이 모조리 폐사하고, 보일러실이 물에 잠겨 보일러까지 교체해야 했다. 그 집에 사는 주민은 마을의 욕쟁이 할머니 천산댁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집은 마을에서 '바른 생활맨'으로 소문난 우 이사가 사는 곳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번지수의 장난인지 극과 극의 두 사람은 허름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두 사람이 이웃이라서 욕쟁이 천산댁은 욕을 더 많이 하고, 우 이사는 극단적인 도덕주의자로 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천산댁은 도덕주의자 우 이사를 보면 위선자로 느껴서 만날 때마다 욕을 퍼붓고, 우 이사는 천산댁의 욕설을 들으며 군자의 도를 얻기 위해 용맹정진하다 보니 극단적인 도덕주의자가 된 게 아닐까?
상황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