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의 수도 니코시아의 출입경사무소남과 북 사이프러스 주민은 출입경사무소를 통해 상대 지역을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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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이프러스는 헌법에서 북사이프러스 지역을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남북 사이프러스 간 통행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 간 자유로운 이동은 2003년 북사이프러스가 분단선을 개방하면서 현실화되었다. 2004년 남사이프러스가 EU에 가입한 이후 남북 사이프러스 간 이동과 교역은 '유럽연합법'에 기반한 '그린라인 규정'(The Green Line Regulation)에 따르고 있다. '그린라인 규정'은 일정한 검사를 거친 후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고 있는데 교역에서도 남북 사이프러스의 특수관계를 반영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현재 남북 사이프러스 사이에는 9곳의 연결통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양측 주민은 신분증만 제시 등의 절차를 거친 후 도보와 차량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외국인 또한 여권만 제시하면 별도의 비자 발급 없이 양측을 방문할 수 있다. 남북을 오가는 출입경 업무는 유엔평화유지군도, 양측 군대도 아닌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
전쟁을 경험한 남북 사이프러스가 자유로운 이동과 교역을 허용하기까지, 적지 않은 문제가 제기되고 그에 따른 지루한 논의가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 한반도의 꽉 막힌 비무장지대를 생각하면 이건 정말 꿈만 같은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남사이프러스가 적극적으로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한 것은 한반도에서 남북 주민의 이동과 교역에 참고할 만하다. 대한민국이 먼저 자유로운 이동과 교역의 문호를 개방하고 북한의 호응을 요구한다면, 언젠가는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이프러스의 그린라인을 통해 본 유엔의 역할
사이프러스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완충지대, 즉 '그린라인'은 유엔평화유지군이 관할하고 있다. 사실 유엔평화유지군은 터키의 침공이 있기 전인 1964년 사이프러스에서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파견되어 있었다(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86호).
그랬던 것이 1974년 8월 휴전 당시 유엔 주도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그린라인이 만들어졌고 이 완충지대를 유엔평화유지군이 관할하게 된 것이다. 비무장지대인 그린라인은 유엔평화유지군 외에 어떤 병력도 출입하거나 상주할 수 없다. 2019년 현재 약 880명의 평화유지군이 이 지역을 감시하고 있다.
유엔평화유지군은 남북 사이프러스의 무력 충돌을 막는 정전 유지 임무와 함께 "정상으로의 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바로 "정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유엔평화유지군의 역할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남북 사이프러스의 완충지대가 정상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엔평화유지군은 농업 등 허가된 민간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린라인 안에 있는 4개의 마을, 특히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필라(Pyla)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유엔 완충지대 내에 있는 '레드라 팰리스 호텔'에서 양측 주민의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한 각종 모임을 지원하기도 한단다(한명섭 저서 <키프로스 분단과 통일 방안> 좋은땅, 2020).
사이프러스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은 평화를 지키는 피스키퍼(Peace Keeper)의 역할을 넘어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정전협정에 따라 탄생한 유엔군사령부와 사이프러스의 유엔평화유지군은 그 성격과 지위, 그리고 역할에 있어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70년을 맞는 지금, 유엔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제3자를 활용한 끊임없는 통일 협상
분단 이후 남북 사이프러스는 꾸준히 통일 협상을 진행해 왔다. 통일 협상은 주로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했으며 남북 사이프러스 또한 인내심을 갖고 협상에 임해 왔다.
특히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코피 아난(Kofi Annan)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 노력이 눈에 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중재로 시작된 통일 협상은 2002년 11월 아난 플랜 Ⅰ을 시작으로, 2002년 12월 아난 플랜 Ⅱ, 2003년 2월 아난 플랜 Ⅲ, 2004년 3월 아난 플랜 Ⅳ와 아난 플랜 Ⅴ까지 남북 사이프로스 통일 논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최종안은 북사이프러스에서 64.9%의 찬성을 받았으나 남사이프러스 주민 75.8%가 반대함으로써 부결되고 만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의 통일 협상 중재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2017년 스위스에서 진행된 통일 협상(17.6.28-7.7)에서는 남북 사이프러스와 안전보장 3개국(그리스, 터키, 영국) 그리고 UN과 EU가 참여해 점령군 철수, 안전보장 체제 변경, 연방제 운영 방식, 영토 반환 등 거의 모든 쟁점에 대한 타협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다만, 일부 당사자의 국내 정치적 고려로 합의를 철회함으로써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그러나 남북 사이프러스는 스위스 합의 실패 이후에도 2020년 10월 유엔 사무총장 주도로 협상 재개 논의를 진행하였고, 2021년 4월 제네바에서 5+1(남북 사이프러스, 보장 3국+유엔) 비공식 회담을 개최하는 등 통일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현재 양측의 통일 방안을 정리하면, 사이프러스와 그리스 측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2개 지역-2개 공동체' 연방제 방안을 주장하고 있으나, 북사이프러스와 터키 측은 연방제 방안이 2017년 협상에서 실패했다며 국가연합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사이프러스의 통일 협상은 제3자, 즉 유엔 사무총장이 남북 사이프러스와 관련국(그리스, 터키, 영국)을 협상테이블에 앉히고 논의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이 한반도 통일의 주체인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남북의 통일 방안이 여전히 차이를 보이는 상황에서 유엔 등 제3자를 통해 통일 협상을 안정적으로 지속하는 방법 또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사이프러스의 사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적지 않은 고민을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상호 방문을 가능케한 적극적인 문호 개방과 유엔평화유지군의 평화지향적 역할,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통일 방안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사이프러스의 분단과 평화만들기, 그리고 통일 협상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은 독자에게 한명섭 변호사의 저서 <키프로스 분단과 통일 방안>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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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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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된 이 섬나라, 자유로운 통행... 남북이 배울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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