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가 지난 2017년 8월 4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7 싸이 흠뻑쇼 'SUMMER SWAG'에서 열띤 공연을 펼치고 있다. 흠뻑쇼는 2022년에도 열렸다.
연합뉴스
내용을 잘 모르는 분들도 제목 정도는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싸이의 흠뻑쇼' 논란, 이야기는 최악의 봄 가뭄 무렵에 시작됐다. 3월, 4월, 5월까지... 영농철은 시작됐지만 비가 안 와도 너무 안 왔다. 5월 강수량 역대 최저 그리고 봄 기온은 가장 높았다. 농촌에서는 갓 심은 마늘이 말라 죽는다며 경운기로 물을 실어 나르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월드스타 싸이가 '흠뻑쇼'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흠뻑쇼는 공연 도중 수만 관객을 향해 물을 뿌리는 게 특징인 싸이의 여름 콘서트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이 행사가 3년만에 재개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콘서트 한 번에 300톤 가까운 물이 뿌려진다는 것. 평상시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한 배우는 트위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워터밤 콘서트 물 300톤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
워터밤 콘서트는 관객과 아티스트가 팀을 이뤄 물싸움을 하는 음악 행사다. 물을 많이 쓰는 콘서트들이 여기저기서 다시 시작되는데 그 대명사로 싸이의 흠뻑쇼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논란 이후, 심각한 가뭄과 기후위기를 고려해 물을 과소비하는 콘서트를 자제해줬으면 좋겠다는 '자제론'이 이어졌다. 반대 의견으로 물 300톤 갖고는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실용론'이 등장했다.
여기에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도 좋지만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자는 '책임론'이 제기됐고, 이에 대한 반박으로 흠뻑쇼를 비판하는 건 도덕적 외피를 두르며 자신의 정의로움을 어필하려는 '선민의식과 엘리트 의식의 산물'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렇게 후끈 달아올랐던 흠뻑쇼 논란은 장맛비가 내리면서 식어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소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가뭄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 과학자들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그렇고, 당장 APEC 기후센터가 내놓은 올해 장마철 이후 동아시아 기후 전망이 그러하다.
"2022년 10월~12월에는 중국 남동부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평년보다 적은 강수가 나타날 확률이 다소 클 것으로 예상됨." (2022년 6월 15일 발표)
한반도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끝없는 기후 변화 속에 비슷한 논란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논란을 말싸움 정도로 넘길 게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공연 소비자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창의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놀면서 환경까지 챙긴 콜드플레이의 공연
기후만 취재해서 그런지 내 눈에는 이번 논란이 공연 분야에도 '가치 소비'가 도입되려는 바람직한 징조로 보인다. 공연의 품질이나 가격과는 상관 없이, 놀 때 놀더라도 환경이나 사회적 현실도 좀 반영해 달라는 '가치' 실현의 요구 말이다.
이는 '땅콩 갑질' 하나로 대형 항공사가 거의 문닫을 위기에 처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한 우유회사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가치 소비'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대기업 회장들은 이런 요즘 소비자들의 변화조짐에 화들짝 놀라 'ESG'라고 하는 '환경 사회 투명경영'방식을 너도나도 도입하고 있다. 오죽하면 세간에 '요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게 ESG 전문가의 숫자'라는 말까지 나올까.
그러나 공연 분야는 가치 소비를 실현하기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분야 중 하나다. 공연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만큼은 세상 일 다 내려놓고 제대로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