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학교 복도에 설치된 쓰레기 분리수거함의 모습. 쓰레기의 양이 확실히 줄었고,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커진 것은 덤이다.
서부원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함부로 내다 버리진 않을 거라는 아이들의 '선의'를 믿었고, 버리기가 불편하다고 느끼면 종국엔 쓰레기를 덜 발생시킬 거라고 여겼다. 일단은 성공적이었다. 처음엔 쓰레기를 책상 속에 욱여넣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으나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다.
쓰레기를 손에 들고 복도 끝으로 걸어와 분리수거를 하는 게 당연시됐고, 교실은 한결 깨끗해졌다. 쓰레기는 버려지는 게 아니라,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되는 거라는 인식이 생긴 건 덤이다. 나아가 분리수거함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리사이클러'라는 이름의 동아리가 꾸려졌다.
교내 매점에서 생기는 플라스틱 포장지류의 쓰레기가 많아 분리수거함이 매일 가득 찰 지경이긴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머지않아 아이들 스스로 자각하고 대안을 찾게 될 거라 믿고 있다. '우리가 불편해져야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캠페인의 취지를 언젠가 깨달을 거라 여겨서다.
그런데, 아이들의 학교 밖에서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리사이클러'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인 아이조차 길바닥에 스스럼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봤다. 학교 안에서는 분리수거를 생활화하고 쓰레기 발생을 줄여야 한다며 캠페인 활동을 앞장서 벌이는 아이라서 더욱 놀랐다.
교문 밖 버스 정류장 주변은 차마 서 있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학교가 시내버스 종점이니, 정류장 주변 쓰레기 대부분은 아이들이 버린 걸 것이다. 탄산음료 캔부터 과자 봉지, 종이컵, 마스크, 나아가 학원의 광고 전단까지 흡사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며칠 전, 정류장 근처에서 캔 음료를 마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버린 뒤 공 차듯 발로 찬 아이를 불러 혼쭐낸 적이 있다. 학교에선 착실하다고 칭찬받는 아이다. 주변에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있어 죄책감이 옅어진 탓일 테지만, 그의 이중적인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다.
더욱 놀라운 건,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의 행동을 지켜본 어른들이 여럿이었는데도 누구 하나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섯 학교가 모여있는 곳의 버스 정류장이니만큼 이웃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교문을 나서면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는 아이처럼, 교사도 교문을 나서면 더는 교사가 아니다.
학교 안팎의 반응이 상반되다 보니 아이들도 분위기를 봐가며 눈치껏 행동한다. 학교 교칙은 학교에서만 지키면 되고, 교사의 생활지도도 학교에서만 유효하다. 그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사고를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교사들에게 학교 밖 '문제아'는 그다지 골칫거리가 아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
학교가 '영혼 없는' 교육 기관으로 전락했다며 손가락질하지만, 교사는 교사대로 억울하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친다 해도, 교문 밖만 나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니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학교는 '콩나물시루'가 아니라 아예 '밑 빠진 독'이라고 푸념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교육이 그저 '잡(JOB)'인 교사들이 태반인 현실까지 부정하진 않겠다. 다만, 그들이 초임 시절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열정을 쏟고 또 쏟았음에도 나날이 교육의 효능감이 떨어지는 부박한 현실에 좌절하고 낙담한 결과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결코 넘을 수 없다'는 불문율은 고스란히 학교 교육의 한계로 귀결되고 있다.
주말 길거리에서 사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다 피운 담배꽁초를 태연하게 바닥에 던진 뒤 신발로 짓이겨 끄는 모습에 혼쭐을 냈다. 그때 아이들처럼 꽁초를 버린 뒤 침을 뱉고 곁을 지나가는 한 어른의 모습에 순간 데면데면해졌다.
아이들은 연신 잘못했다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하나같이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아마 내심은 달랐을 거다. 만약 "저 아저씨에겐 왜 나무라지 않느냐?"고 물었다면, 뭐라고 답해야 했을까. "저분은 성인이고, 너희들은 청소년이잖아"라고 답한다면, 아이들은 과연 수긍했을까.
동료 교사로부터 학교도 아닌 길거리에서 굳이 불러 세워 꾸짖는다고 아이들의 행동이 바뀔 것 같으냐는 핀잔을 들었다. 하긴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데, 아이들을 나무라는 대신 그 어른의 행동을 호되게 꾸짖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저나 교사 노릇 하기 참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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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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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나서면 '문제아'로 돌변하는 '모범생'들,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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