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픽사베이
자녀가 중고등학생에 접어들도록 입양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가정을 간혹 만난다. 갓난 아기 때 입양을 했지만 이제껏 입양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 입양을 결심할 때부터 비밀에 부쳐야지 마음먹는 가정도 있지만(현재는 서류상 입양사실을 비밀에 부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간혹 아이를 키우며 마음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밝히는 것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고, 그로 인해 닥칠 위험(엄마의 자리와 가족관계가 흔들릴 거라는)을 아예 차단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냥 내 새끼로 사랑하면서 키우면 되지 않을까, 갓난아이 때 입양된 녀석이 무얼 알기나 할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비밀 입양이 자녀를 위한 선택이라고?
입양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싶어 하는 부모는 이것이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부모 자신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측면이 크다. 입양 사실을 말하게 되면서 맞닥뜨려야 할 심리적 고통과 혼란, 혹은 수치심(난임과 관련한)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그리 쉽지 않은 문제란 걸 나도 알고 있다. 자녀와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내게도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비밀을 숨기는 경우가 비밀을 밝혔을 때보다 오히려 자녀에게 더욱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많이 보아왔다. 비밀이란 내가 말만 하지 않는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아이는 어느 순간 다양한 방식으로 비밀을 감지해내기 때문이다.
자신이 들어서자 뚝 끊기는 대화, 남아 있지 않는 어린 시절의 사진들, 어떤 부분에서는 연결 되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 자랄수록 닮지 않은 외모, 간혹 어른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얼버무리는 이야기 등 무언가 가족 전체를 감싸고 있는 '침묵의 벽'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쌓이면서 아이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되고 이유 모를 불안이 스밀 수 있다.
입양 사실을 비밀에 부친 가정이건, 입양 사실만 이야기해주고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 가정이건 부모가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준 적이 없다는 걸 느낀 아이는 그 부분이 자신에게 수치스러운 부분임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부분, 혹은 입양과 관련된 부분을 부모가 껄끄러워하고 말하기 원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자신은 왠지 모를 수치스러운 존재라는 정체성을 갖고 자라게 되는 것이다.
가끔 입양 부모 중에는 아이가 다 자라서 스스로 이 사실을 감당할 만한 성인이 된 후에 입양 사실을 말해주는 게 좋지 않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출생과 입양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은 몰랐던 사실 하나를 간단히 추가하는 것이 아닌, 그간 나의 인성과 정체성을 쌓아 올렸던 생의 모든 기초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 모든 바닥의 기초를 다시 허물고 새로운 사실로 쌓아가야 하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래서 뒤늦게 입양 사실을 들은 성인들은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위에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쌓아가는 것은 아무리 성인이라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 과정에서 그간 자신을 속여온 가족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커지며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때는 부모나 형제 다른 이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극히 적고 오롯이 당사자 혼자 겪어낼 고통만 거대해진 이후다.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숨겼던 것들이 먼 훗날 자녀에게 더 큰 고통을 건네는 일이 되고 만다. 비밀은 가족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고 누구도 보호하지 못한다.
아이에게 물려줘야 할 '진실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