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원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우성
그는 안중근 의사를 무척 존경하였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안 의사의 살신성인정신과 평화사상이었다. 1995년 9월 5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안 의사를 추모하는 기존의 숭모회가 있었지만, 박정희의 '특별 배려'로 조직된 이 단체는 '안중근 정신'과는 격과 결이 다른 사람들이 이끌고 있다고 판단, 새로운 기념사업회를 만든 것이다.
가톨릭 신부가 천주교 순교자들을 놔두고 굳이 안 의사의 기념사업회를 조직한 것은 한국천주교의 전비(前非)를 속죄하는 의미도 깔려 있었다. 선대들의 죄업을 통절하게 반성하면서 안 의사의 정신을 선양하고 바르게 잇고자 한 것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사목 행정을 주도했다는 시대적 상황과 한계가 있었지만, 일제치하에서의 교회의 모습이란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배신과 반역 바로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천주교 신자는 살인할 수 없다는 기계적 논리를 내세워 교회 밖으로 쫓아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애정도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반면 일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뮈텔(Mutel) 주교가 이토 히로부미의 영결식에 참석하여 한가운데 놓은 조화와 그 밑에 '천주교회'라 쓰인 글자를 생생히 기억하여 일기에 적었다는 것은 너무나 대조적인 일로서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대일관과 한국관을 알 수 있다(1999. 11. 4. <뮈뗄일기> 참조).
뮈텔 주교는 또한 의병을 도와준 풍수원의 정규하 신부(1863년 출생, 1896. 4. 26. 서품. 1914. 10. 23. 선종)와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까지 치른 윤예원 신부(1886년 출생, 1914. 3. 7. 서품, 1969. 5. 7. 선종)를 문책했으며 서울 용산신학교에서는 3.1운동과 관련하여 여러 신학생을 퇴학시켰고 대구신학교는 자진 휴교하기에 이른 일도 있다. 더구나 교회는 3.1운동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기까지 했다. (주석 9)
기념사업회는 안 의사의 각종 추모사업을 폭넓게 진행하였다. 2002년 중국 대련에서 안 의사 순국 92주기 남북공동행사를 거행하고, '안중근 평화상'을 제정ㆍ시상을 필두로 해마다 학술대회와 추모공연을 빠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