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책상 위에 <다산자치실록> 책자가 올려져 있다. 표지에는 푸른색 전통 문양이 그려져 있다. [사진 끝]
김도현
그렇다. <다산자치실록>은 내가 수원다산중학교 학생자치회의 부회장이었던 시절, 1년간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발간했던 책자다. '실록'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끌어왔을 만큼 그때 우린 정말이지 학생자치회에 진심이었다.
우선 교내 소식을 공유하는 '동네방네' 게시판을 설치해 학생들 간 소통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다산신춘문예'라는 이름의 유머러스한 글쓰기 대회를 만들었다. 기존에는 동아리 단위로만 부스를 운영할 수 있었던 축제에 '자율부스' 코너를 신설해 원하는 누구나 부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장소와 예산을 지원했다.
그뿐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교내 콘서트,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어록과 사진으로 꾸민 전시회까지… 사업이 매달 최소 2개씩 있는 바람에 우린 방과 후에도 학교에 살다시피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역시 '일일매점'이다. 운동회 날 학생들이 교문을 넘어 편의점에 가지 않도록 아예 학생회가 매점을 운영하고 수익금을 기부하겠다는 기획이었는데, 할 일은 왜 그렇게 많던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돌려 원하는 간식 종류를 파악하고, 예산을 짜서 물품을 구매하고, 학교 지하를 매점으로 꾸미고, 고객 동선과 질서 유지 계획까지 세워야 했다. 이제 돌아보면 참 서툴렀다 싶고, 또 후회되는 부분도 많지만 어쨌든 그건 내 생애 첫 대형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가 나를 키웠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는 수업에서 배우기 힘든 여러 가지 역량을 쑥쑥 키웠다. 우선 기획안을 쓰는 법을 익혔고,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적절히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했다(당시 교장 선생님은 탄산음료 판매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우리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엇보다, 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외부 자원과의 연결을 꾀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일일매점 수익금을 어디에 기부할지 고민하다가 유니세프에 연락을 취했고, 유니세프로부터 포스터와 배너 등을 제공받게 된 것이다. 우리 계획을 유니세프 측에 공유하고 기부 방식 등을 조율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일일매점은 유니세프와 우리 양쪽에 '윈윈'이었다. 우리는 일일매점이라는 기회를 빌려 학생들에게 아동권리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었고, 유니세프 입장에선 후원금과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일매점 당일, 한 학생은 음료값을 내밀고선 좋은 일이니 거스름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고, 이건 우리의 기획의도가 완벽히 통했음을 보여주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일일매점을 기획해 본 경험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과 노하우를 쌓고 나니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의지가 생긴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퀴어·페미니즘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취지가 비슷한 다른 고등학교의 동아리와 연합해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자를 함께 엮어서 온라인으로 판매했고, 아예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나가서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미리 신청서를 내고 선발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때는 학교 안에서 행사를 열고 수익금을 외부에 기부하는 데서 그쳤다면, 고등학교 때 한 프로젝트는 학교 밖으로 더 힘차게 뻗어 나가는 종류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