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8일 중앙일보에 실린 '19세 학생 프린치프의 총성, 세상을 뒤집다' '제국의 황태자는 행운의 여신을 외면했다' 기사.
중앙일보 PDF
그날 그가 강의했던 내용은 같은 해 3월 8일자 <중앙일보> 기사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제1차 세계대전 100년, 사라예보를 가다'에도 나온다. 이것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들이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사건을 설명하는 기사다.
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다. 이 사건이 빌미가 돼 그해 7월 23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상대로 "48시간 내에 세르비아인들의 반(反)오스트리아 활동을 막으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닷새 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보균 후보자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황태자 부부 저격이 그 같은 세계사적 결과를 낳았는데도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중 1명만 사형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황태자 부부를 쓰러트린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포함한 7명 중에서 6명이 사형을 받지 않은 것에 관해 위 <중앙일보> 기사에 이렇게 썼다(괄호 속 내용은 원문 그대로다).
"사건은 기묘한 조합의 연속이다. 프린치프는 대역죄로 다스려졌다. 합스부르크 법정은 품격을 지켰다. 그는 사형당하지 않았다. (20세 미만 사형 금지 법률). 20세에서 27일(암살일 기준) 모자랐다. 그는 20년 징역형을 받았다. 암살단 7명 중 사형수는 20대 1명(다른 20대는 도주)이다."
오스트리아는 20세 미만에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만 20세에서 약간 모자랐다. 그래서 사형 대신 징역형을 받았다.
이날 한림대 강의에서 박 후보자는 그를 죽이지 않은 오스트리아를 높게 평가했다. 당연히 사형을 시켜야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품격을 지킨 사실을 호평했다. "당연히 예외적인 조처를 해야 하는데, 역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예외를 잘 두지를 않습니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오스트리아 법률에 따르면 프린치프는 '당연히' 사형을 받지 말아야 했다. 그가 사형을 받지 않는 것이 오스트리아 법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박 후보자는 "당연히 예외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품격을 지켰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역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예외를 잘 두지를 않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전쟁 도발의 반인류성'과 '법률에 따른 사형 미집행' 사이에서
오스트리아는 1806년에 해체된 신성로마제국을 계승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로마교황청의 지지 하에 서유럽 국제질서를 이끌었다. 이 제국은 서유럽에서 황제 칭호를 독점했다.
이 나라가 1806년에 해체된 것은, 나폴레옹이 1804년에 프랑스 황제가 되면서 기존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킨 결과였다. 신성로마제국이 서유럽의 황제 칭호를 독점하던 구조가 나폴레옹의 전쟁과 황제 등극으로 인해 무너졌던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세계를 지배했다는 박 후보자의 언급은 나폴레옹 등장 이전의 신성로마제국을 가리킨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황태자 저격 사건을 빌미로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박 후보자는 오스트리아의 전쟁 도발이 갖는 반인류적·반역사적 의의를 부각시키지 않고, 법률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을 '품격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역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이라고 찬미했다. 그런 다음 이런 발언이 나왔다.
"이번에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우리는 틈만 나면 예외를 자꾸 두려고 그러는데, 미국이라든지 영국이라든지 프랑스·러시아·터키 이런 나라들 가면 느낄 겁니다. 절대 예외를 안 둡니다. 세계를 지배해봤던 나라들은 예외를 두면 순간적으로 괜찮은데 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거를 알고 있어서 일단 법이 정해지면 법을 지키는 게 세계를 경영했던 나라들의 차이점입니다. 일본도 아시아를 지배해봤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 보면 준법정신이 강합니다."
정리하면 일본은 세계를 지배해봤기 때문에 예외를 두지 않으며, 이로 인해 일본인들의 준법정신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이 언급에는 두 개의 주체가 들어 있다.
법의 권위를 지키고자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일본 지배층이 그 하나이고, 지배층의 엄격함으로 인해 준법을 할 수밖에 없는 일본 국민들이 또 하나다. 지배층이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엄격함을 발휘해야 국민들의 준법정신이 강해지고, 그래야 세계를 지배할 품격을 갖게 된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일본에 관한 언급이기 이전에, 민중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소신을 담은 언급으로도 읽힌다.
일본이 범한 '예외'들... 박보균 후보자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