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진과 소나무초지진에서 현재 볼 수 있는 건 작은 옹성과 몇백년 된 소나무 뿐이다. 그러나 초지진의 주변 풍경과 지형은 변함없이 역사의 상상을 펼치게 만들어 준다.
운민
조선의 전(前), 후(後)를 갈랐던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연이어 겪은 뒤 수도방위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 병목에 자리한 강화도는 수도 한양 이상으로 섬의 해안가를 따라 방어시설을 촘촘하게 건설한다. 돈대, 보, 진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강화의 관방유적은 섬 전역에 54곳이 분포해 있고, 현재는 절반 이상이 새롭게 복원되어 근근이 찾아오는 답사객들을 맞아준다.
강화는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주말이면 차들로 붐비는 여행지지만 초지진, 광성보 등 일부 관방유적을 제외하고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북쪽 해안가는 북한과 접경지역인 관계로 민통선 통제 구역으로 설정되면서 접근이 힘든 장소가 많다.
하지만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구한말, 강화도는 프랑스와 미국 등 서양 열강 침탈의 주무대가 되어 유난히 수난을 많이 겪었다. 강화를 점령하기 위해선 그 외곽의 돈대, 진, 보를 제압하는 게 중요하므로 그 격전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우선 그곳들을 여행하기 전, 진과 보 그리고 돈대의 차이는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자.
진부터 그 명칭에 대해 살펴보면 진압할 진(鎭)을 쓰는 만큼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자리하면서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에도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다음으로 보는 작은 성 보(堡)라는 뜻으로 진 다음의 지위를 지니며 주로 방어에 집중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마지막으로 돈대는 도드라지게 나온 지형을 뜻하는데 멀리 바라 보이는 지형에 들어서 주로 감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돈대는 보나 진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정도로 차이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강화 전역의 모든 관방유적을 가볼 수 없으므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이 섬의 기나긴 해안선 중 조운선의 주 통로였으며 잇따른 전투의 현장이기도 했던 강화, 김포 사이의 해협 염하 일대를 중심으로 그 기나긴 여정을 떠나보도록 하자.
이 해협을 중심으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 잘 알려진 관광지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강화 남부를 연결하는 초지대교를 지나 남에서 북으로 해안가를 따라 올라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그 초입에는 수많은 관방유적 중 가장 명성을 가지고 있는 초지진이 있다. 초지진은 그 명성에 걸맞게 김포에서부터 이곳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건너가는 다리 이름이 '초지대교'인 것처럼 강화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