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먼지벌레스컹크처럼 꽁무니에서 냄새가 지독하고 뜨거운 방귀를 낀다.
이상헌
다윈은 진화론을 완성해 놓고도 발표를 20년이나 미뤘다. 따개비 연구에 몰두하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었으므로 보수적인 기독교 세력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는 명확한 사례를 확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종의 기원을 공동으로 발표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와의 속사정을 얘기하면서 다뤄보겠다.
벼룩 아가씨, 곤충과 식물의 화학적 상호작용을 개척하다
19세기 유럽 경제를 장악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세 인물도 빼놓을 수 없다.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Lionel Walter Rothschild)는 시오니즘 정치가로서 팔레스타인 땅을 유태인 정착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벨푸어 선언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대중에게 덜 알려진 사실은 그가 한평생 나비에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부유한 금융재벌은 전문적인 채집팀을 꾸며서 나비목 곤충을 수집했는데 그 수가 무려 225만 마리였다. 이 방대한 컬렉션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나비목 곤충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 되었다.
또한, 월터의 형제인 나다니엘 찰스 로스차일드(Nathaniel Charles Rothschild)는 은행가이자 곤충학자였다. 그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희귀한 나비를 발견하면 기차를 멈추게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다. 괴짜 기질이 넘쳐났던 그는 벼룩에 남 다른 관심을 가졌다.
찰스의 딸, 미리엄 로스차일드는 아버지가 모은 260만 마리의 벼룩을 여섯 권의 책에 담으면서 스스로를 '벼룩 아가씨(Flea Lady)'라고 칭했다. 30년에 걸친 찰스의 벼룩 컬렉션은 현재 런던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표본을 보유한 곳이다. 가풍을 이어받아 미리엄도 아마추어 과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정규 교육을 마치지 않았으면서도 평생 동안 350여 편의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그의 첫 번째 저서는 1952년에 세상에 나왔는데, <벼룩, 흡충 그리고 뻐꾸기: 조류 기생충 연구, Fleas, Flukes and Cuckoos: A Study of Bird Parasites>다. 그는 곤충의 화학 상호작용을 처음으로 연구했다. 화학생태학자로서 유명한 토머스 아이즈너는 1960년 한 곤충 심포지엄에서 미리엄을 이렇게 소개했다.
"화학적 의태 개념을 연구에 도입했으며,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착상을 이 모임에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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