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주가 모양개항기 김준근(金俊根)이 그린 풍속화
독일 함부르크 박물관
병술집은 개화기 때부터 크게 성행한 형태이다. '병술'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병에 담은 술이란 뜻이다. 이 병술집은 갑자기 손님이 와서 술대접을 해야할 때 이용하거나 술을 팔지 않는 국밥집에서 손님이 심부름꾼을 시켜 술을 사다 마실 수 있는 편리한 형태로 각광을 받았다. 병주가에서는 탁주, 백주, 과하주, 소주를 헌주가(약주제조 판매)나 소주가(소주제조 판매)에서 사와서 소매하지만 탁주만은 자기가 직접 만들어 파는 곳이 많았다.
주막이 숙박을 겸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면 한잔 술을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집이 목로주점이다. 목로주점은 술잔을 놓기 위해서 쓰는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목로, 木爐)에 술을 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목로주점에서 술을 마실 경우에는 술 한잔에 안주도 하나만 먹어야 했다.
지금은 술집에서 술값과 안줏값을 각각 따로 계산하지만 목로주점에서는 술값에 안주 하나의 값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목로주점을 다른 말로 '선술집'이라고 불렀다. 목로주점에는 원래 앉는 의자가 없고 손님들은 모두 서서 술을 마시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술집들이 조선 전기부터 구한말까지 다양하게 존재하였고 시기 시기마다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러한 술집들은 구한말에 와서 크게 변하게 된다. 바로 요리옥(요리집)의 출연 때문이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까지 성행했던 술집 및 유흥업소의 한 종류에 요리옥이 있다. 객실을 갖추고 술과 요리를 팔았는데 가무하는 기생이 동석하기도 했다. 요리옥의 시초와 관련되어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1898년 광교 남쪽에 수월루가 처음 언급되었고 이후 취향루, 혜천탕, 청향다관 등 많은 요리옥 또는 유사한 형태의 업체들이 만들어졌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명월관'은 궁중의 음식 관련 책임자였던 안순환이 1903년에 고급 요리옥을 차려서 궁중 음식을 일반에게 내놓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명월관의 술은 궁중나인 출신들이 담근 술을 쓰는 바람에 인기를 끌었다.
초기에는 약주, 소주 등 조선 전통술에 일본 술 정도를 판매를 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샴페인, 위스키, 브랜드, 포도주 등 서양술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처럼 대다수 요리옥의 메뉴는 국내외 음식과 각종 술을 판매하는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