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숙 어르신은 보물창고 같은 여닫이 함에서 사진첩을 꺼내 보면서 추억에 빠지셨다.
최육상
어르신이 펼친 앨범을 보면서 대화는 자연스레 흘러갔다. 앨범에는 '1993년 4월 14일' 게이트볼 치는 사진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르신이 68세 때였다.
"내가 몸은 쬐깐해도 운동을 잘했어. 학급 릴레이 선수도 했제. 글고 내가 우리 순창군 게이트볼 1호 선수야. 게이트볼은 한 팀이 다섯인데 내가 항상 1번을 쳤어, 지면 2번을 쳤고. 이긴 팀이 1번, 진 팀이 2번이거든. 내가 (게이트볼) 신식 심판 자격증도 땄응게."
어깨띠 메고 거리에서 무언가 홍보하는 사진도 있었고, 서로 다른 관광지로 보이는 곳에서 말을 타며 찍은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빛바랜 사진들에서 어르신이 오랜 세월을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르신은 1977년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45년간을 살아오셨다. 아들막둥이인 다섯째 선재식씨는 "내가 고3, 18살 때 아버지가 작고하셔서 내가 고교 졸업하며 어머니 모시고 막내 동생 고등학교도 보냈다"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새해 소망? 별 거 있깐? 건강하게 살아야제"
어르신 방의 조그만 탁자 위에는 작은 사진 액자 몇 개가 옹기종이 놓여 있었다. 선재식씨 부부가 4남매 자녀와 함께 2012년에 찍은 사진에는 10년 전 어르신의 젊은 모습도 보였다. 어르신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집안 곳곳에 사진으로 남아 있다.
어르신에게 호랑이띠 새해 소망을 여쭸다.
"새해 소망? 별 거 있깐? 그냥 건강하게 살아야제."
어르신은 하루 세끼를 소식한단다. 어르신은 자그마한 왼손바닥을 보여주면서 오른손으로 왼손 네 손가락의 네 마디 정도를 움켜쥐고 "내가 식사를 요만큼밖에 안 한다"면서 "언젠가 식사할 때 옆에 있던 할머니가 '어떻게 그걸 먹고 살 수 있느냐'고 타박했다"고 웃었다.
어르신 방을 나오는 길, 텔레비전과 벽 사이에 '단팥빵'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빵을 좋아하시느냐"고 여쭈니, 선재식씨가 "어머니가 빵 같은 단 것을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다음에 맛있는 순창빵 사가지고 올게요."
어르신에게 약속드리며 인사를 올리자, "그랴, 그냥 와도 되니께 언제든 와"라고 하시며 해맑은 미소를 내보이셨다.
풍광 좋은 순창읍을 배경으로 어르신에게 사진촬영을 요청 드렸다. "하트, 하트"를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내보이며 빙그레 웃으셨다.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비결은 항상 웃는 생활에 있지 않을까. 호랑이띠 97세 어르신의 웃음 기운을 듬뿍 전해 드린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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