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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주도한 종교계 지도자들, '비폭력' 택한 배경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13] 거사일을 3월 1일로 결정한 데는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등록 2022.01.01 12:46수정 2022.01.0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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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 3.1운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벌어진 1919년 3.1운동 광경.
대한문 앞 3.1운동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벌어진 1919년 3.1운동 광경.서울역사박물관
 
3ㆍ1혁명을 주도한 종교계 지도자들은 시종 '비폭력'을 내세웠다.

천도교의 독립선언 3대원칙은 1. 독립운동은 대중화할 것. 2. 독립운동은 일원화할 것. 3. 독립운동의 방법은 비폭력으로 할 것이었다. 이 뜻은 최남선에게도 전달돼 독립선언서의 기본원칙으로 삼아 작성하였다.

독립운동사 연구 일각에서는 '비폭력 방법'과 관련 '투항주의적' 등 여러 가지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상황을 살피면 비폭력주의를 내세울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당시 조선에는 조선 주둔 일본 정규군 2만3천여 명, 일제 헌병경찰 1만3천3백80명, 조선총독부 관리 2만1천3백12명, 34만 명의 일본인 이주민 중 무장 일본이주민 2만3천3백84명 등 약 8만1천76명이 있었다. 일제는 이밖에도 언제든지 한국에 증파할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제는 조선을 완벽하게 통치하고자 전국에 수 천개의 일본군주둔소와 헌병ㆍ경찰관주재소와 조선총독부 행정조직을 거미줄 같이 늘어놓아 총검으로 식민지 무단통치를 자행하고 있었다. (주석 5)   

일제는 1907년 9월 3일 이른바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제정하여 한국인의 총기 소지나 운반을 철저히 탄압하고, 병탄 이후에는 이 단속법을 더욱 강화하였다. 한국인은 철저히 무장해제된 상태이어서 산짐승이 날뛰어도 이를 처치할 총기 하나도 없었다. 박은식은 이를 두고 "한국인은 일제의 탄압으로 '촌철(寸鐵)'도 갖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당시의 사회적 조건을 고려할 때 만일 3ㆍ1운동의 지도자들이 민중에게 폭력방법을 요청했다면 3ㆍ1운동은 민중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파급되어 1,700만 명의 국민 중에서 220만여 명이 봉기한 대중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탑골공원과 기타 요소에 일본군 몇 개 중대나 몇 개 대대만 투입해도 진압되는 소규모 무장 폭동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다. (주석 6)
 
 3.1운동 당시 비각(정동) 근처에서 만세운동을 구경하는 사람들
3.1운동 당시 비각(정동) 근처에서 만세운동을 구경하는 사람들시민주권
 
거사일을 3월 1일로 결정한 데는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첫째, 당시 고종황제의 국장을 2~3일 앞두고 각 지방에서 다수의 인사가 서울에 모였을뿐 아니라 고종황제를 일인들이 역신배(逆臣輩)를 사주하여 독살하였다는 말이 떠돌았기 때문에 인심은 극도로 격분하였다. 예로부터 천시지리인화(天時地理人和)는 사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3대 조건이라고 하는 말도 있거니와 이러한 시기야말로 가위천여(可謂天與)의 시기라고 할 것이다.

둘째, 이날은 조선민족에 영원한 기원이 될 날이다. 이 운동은 조선민족의 성스러운 과업으로서 타일에 이 시일과 이 운동을 합쳐서 부르게 된다면 그것이 곧 이 운동의 명사(名詞)가 되는 것이다. 이름이란 실체를 대표하는 말이므로 이름과 실체가 부합되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는 3월 1일을 요약하여 부르기를 三一이라 하고 여기에다 이 운동을 가해서 부르기를 3ㆍ1운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三一은 삼위일체의 철학적 용어로서 여러가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말하자면 3교단이 일체가 되어서 일으킨 의미도 되고, 영토ㆍ인민ㆍ주권의 3요건으로서 일국가가 성립된다는 의미로서도 삼위일체가 부합되는 것이다. (주석 7)


주석
5> 신용하, <3ㆍ1운동은 누가 왜 어떻게 일으켰는가>, <신동아> 1989년 3월호.
6> 앞과 같음.
7> 최린, 앞의 책, 193~19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박동완 #민족대표_33인 #박동완평전 #근곡_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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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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