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처음 마셨던 맥주는 어떤 맥주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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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처음 마셨던 맥주는 어떤 맥주였는가? 나는 내가 처음 마셨던 맥주를 기억한다. 부모님을 따라 치킨을 먹으러 갔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생맥주를 따라 마셨다. 시원했지만, 쓰고 비렸다.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런 것을 돈 주고 마시는 걸까. 그리고 지금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책상에 맥주가 놓여 있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서 들이켰던 맥주, 한여름 치킨과 함께 마시는 맥주. 우리가 처음으로 만났던 맥주의 대부분은 투명한 황금색을 띠는 라거였을 것이다.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007 스카이폴>(2012)에서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분)가 마티니 칵테일 대신 집어 들었던 하이네켄도 라거다.
경쾌한 탄산감과 맥아의 구수함, 시원한 목넘김 등이 라거를 규정한다. 우리는 이 맛에 익숙하다. 다양한 해외맥주와 수제맥주를 취급하는 가게에 가도, 친구들에게 다양한 맥주를 소개시켜줘도, 결국 선택지는 라거로 돌아오곤 했다. "이게 맥주지"라는 감탄사와 함께.
라거는 맛이 없다고?
라거는 세계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스타일의 맥주다. 에일은 상면발효, 라거는 하면발효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상온(17도에서 23도)에서 발효할 경우, 효모들이 윗 부분으로 떠오른다. 저온(8도에서 13도)에서 발효할 경우, 효모들은 맥주의 밑부분으로 가라앉는다. 서로 사용되는 효모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에일은 에일 효모(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시아)로, 라거는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발견한 라거 효모(사카로 마이 세스 파스토리아)로 만든다.
'라거'라는 이름은 저장을 뜻하는 독일어 'lager'에서 왔다. 저온의 상태로 창고에서 일정 기간 동안 숙성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1842년, 체코의 플젠 지방에서 시작된 '필스너 우르켈'은 라거의 역사를 상징한다. 황금빛 라거의 본령이다.
필스너 우르켈 등의 필스너는 청량한 맛을 자랑하는 동시에, 체코에서 생산되는 '사츠 홉'이 만들어내는 꽃향, 그리고 쌉쌀한 맛을 내세운다. 필스너는 이후 하이네켄, 칼스버그, 벡스, 스텔라 아르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의 라거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19세기 미국에서는 조금 다른 움직임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수확되는 보리가 맥주를 양조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쌀과 옥수수, 전분 등의 부가물이 사용된 것이다. 부가물은 풍미를 연하게 만드는 대신, 맛을 가볍게 했다. 원가 역시 절감할 수 있었다.
이 스타일 중 대표적인 맥주가 바로 '맥주의 왕'을 자처하는 버드와이저다. 그러나 버드와이저를 왕이라 부르기에는 주저하게 된다. 체코 맥주에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지만 무게감이 없고, 맥아의 맛이 흐리다. 그러나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 24위에도 올랐으니, 상업적으로는 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동 계급, 블루 칼라를 상징하는 맥주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국식 라거는 세계 맥주의 판도를 바꿨다. 우리나라의 카스, 하이트 맥주, 테라, 일본의 아사히 맥주 역시 미국식 부가물 라거에서 출발한 것이다. 부가물 라거는 갈수록 가벼운 맛을 추구했고, 이에 따라 '라거는 맛없는 맥주다'라는 오명이 생기기도 했다. 맥주의 전체 역사에서 놓고 보면, 오히려 '신진 세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맥주가 라거다. 그러나 대기업의 힘을 입어 빠르게 시장을 점령한 이후로는, 맥주의 기득권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라거다.
물론 라거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최근 국내 브루어리인 핸드앤몰트에서는 '다크 인디아 페일 라거'라는 스타일의 맥주를 내놓았고, 사무엘 아담스나 브루클린 라거처럼 맥아와 홉의 풍미를 강조한 '앰버 라거'도 있다. 검은 외관과 은은한 향을 자랑하는 발틱 포터, 매우 높은 도수를 자랑하는 아이스복과 도펠복도 라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라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딱히 알려지지 않았다.
가끔은, 단순한 것이 끌리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