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일지우리가 함께 산지 1년 되던 11월 11일, 어머니가 쓴 일지 내용이다. 매일 일지를 쓰고 달력에 날짜 표시를 하다보니 이제 매일 아침 날짜를 확인하는 것이 서서히 습관이 되어간다.
이진순
생활용품을 마련하느라 눈이 아프도록 인터넷 쇼핑을 하고 마트에 발품을 팔며 첫 한두 달은 지나갔다. 현무암 돌담길이 늘어선 마을길을 돌아다니고 바다 나들이를 하면서, '아 내가 진짜 제주에 와 있구나'라는 느낌으로 신기하던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기분 좋은 바람으로 나를 맞아주는 옆 마을의 연못은 어느새 '내 마음의 명소'가 되었고, 어머니가 사시던 집까지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다닐 수 있는 예쁜 마을길도 알게 되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푸르고 넓은 바다는 이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믿음직한 친구 같다. 한겨울 초록의 양배추가 신기했던 제주의 겨울 밭 풍경도 두 번째를 맞는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제주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어머니에게 우리가 같이 산 지 1년이 되는 날이라는 말을 했더니 그것밖에 안됐냐고, 너랑 쭉 살아온 것만 같다고, 혼자 살았던 1년의 기간도, 아버지와 살았던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일지에는 나와 같이 산 지 어느새 1년이 되었다고, 정말 세월이 빠르다고 적었다. 그때그때 어머니의 마음이다.
금방 있었던 일도 종종 잊어버리는 어머니와 일주일쯤 지내다가 궁금한 마음에 "어머니, 센터 갔다 오믄 빈집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나가 집에 이신(있는) 건 알맨(알아)?"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눈이 좀 커지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의지할 수 있는 딸이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표정 없던 어머니의 얼굴에 표정과 생기가 조금씩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 무채색의 느낌에서 유채색의 느낌에 가까워졌달까?
어머니는 치매 검사와 관리를 시작한 지 4~5년이 되어가는데, 심해지지 않고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큰 도움이 아니라 기본적이고 작은 도움만으로도 어머니의 삶은 밝아진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싼다. '돌본다'는 것은 이런 삶의 기본을 챙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집안에서 움직이는 정도는 문제없을 만큼 잘 걷는다. 바깥 산책도 지팡이와 휠체어가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해서, 따뜻한 일요일 낮이면 바닷가와 연못 나들이를 나서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