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 지방자치제 쟁취를 위해 단식 투쟁을 할 때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문동환 목사.
문동환 목사 카페 '문동환의 조각달'
13대 국회가 개원되면서 평민당을 선두로 다른 야당도 지자제 실시를 공약하고 입법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3당합당 후에 지자제 문제는 의정활동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평민당만이 이 이슈를 줄기차게 제기하였다. 여기에는 김총재의 남다른 의지가 베어 있었다.
나는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1963년 이후 의정생활의 전 기간에 걸쳐 싸워왔다. 나에게 별명을 붙인다면 '미스터 지방자치'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이 문제에 몰두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나는 예산심의가 있을 때마다 지방자치를 실시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곤 했다. 때로는 이 문제만으로 몇 시간씩 정부를 추궁한 적도 있었다.
1971년 대선에 입후보했을 때도 나는 지자제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1년 이내에 제1단계로써 지방의회, 제2단계로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400만이었다. 인구가 서울에만 대거 집중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때 공약의 하나로 수도권이 비대해지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기구를 과감하게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대전을 행정수도로 한다는 안건이었다. 그후 점점 중앙집권이 진행되어 지방자치가 무산된 채 현재 서울은 당시 인구의 두배 이상인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위성도시까지 포함하면 1,400만 명에 달할 것이다.
서울 인구가 25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600만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서울과 지방도시에서는 경제, 문화 등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커졌으며 서울의 팽창은 멈출 수 없었다.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도 일어나는 것이다.
평민당은 1988년 12월 「지방자치에 관한 공청회」를 비롯 소속의원들이 국회 대정부질의를 통해 지자제 실시를 거듭 촉구했다. 소속의원들이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제출하며 조속한 실시를 요구했으나 거여가 된 정부 여당은 이를 외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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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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