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기념일도 집에서 챙긴다.
김정아
그런 우리가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외식이 사라졌다. 일단 사 먹으면 가격 대비 품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우리가 사는 캐나다에서는 세금과 팁을 주고 나면 별 대단한 것을 먹지 않았음에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 가격으로 이걸 먹었나 싶은 허탈함이 생기기 쉽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냥 기분을 내서 밖에서 해결하고 싶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두 번 집밥이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정말 외식을 할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남편은 밀가루를 못 먹는 실리악 체질이며 나는 설탕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다. 그러다보니 외식에서 선택할 수 있는 메뉴의 폭이 남들보다 적고, 가능한 집에서 해먹는 것이 속 편하다.
한국에서 많은 주부들이 집밥을 내켜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오롯이 주부 몫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금은 세대가 바뀌어서 집안일을 하는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지만, 내 세대에서 식탁은 당연히 주부의 몫이었다.
가끔 남편이 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이벤트였고, 역시 그 뒤처리는 고스란히 아내들의 몫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많은 가정에서 아내의 시간과 수고를 줄이려고 외식이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 식탁 차림이 내 몫이라는 것에 대해 딱히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다만 혼자서 먹을 때에는 그냥 양푼에 밥을 쏟아 넣어 비벼먹거나, 대충 이것저것 넣고 볶아서 프라이팬 채로 들고 와서 컴퓨터 앞에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 식사라기보다 간편하게 '때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난 후로는 나는 오롯이 혼자 남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것이 외로움인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살았다.
함께 요리하고 치우면 달라지는 주방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와 함께 살기 시작하던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의 내 기분은 "아, 이게 사람 사는 것이로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오랜 외로움에서 벗어나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아이 셋을 키워낸 남편은 주방 일이 손에 익어 척척 해냈기 때문에,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먹고, 함께 치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아내가 생겼으니 그 지겨운 일은 이제 그만하고 얻어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자신이 주도하여 저녁을 차릴 때에도 생색을 내는 법이 없었다.
그때, 눈물이 고인 내 얼굴을 보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던 남편 역시, 긴 외로움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함께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을 다 키워서 떠나보낼 때까지 참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아이들이 떠나서 홀가분 하기는 했지만, 역시 빈 집의 긴 외로움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세월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결혼을 하고 서로 의지한다고 무조건 집밥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둘 다 사실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거의 요리에 목숨을 거는 수준에 들어가는 특이한 종자들이다. 나를 만나기 전에도 남편은 티브이의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보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직접 실험해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 커서 분가한 아이들의 생일상을 집에서 풀코스로 근사하게 차려내는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