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다섯 학생이 박재란 학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듣고 있다.
최육상
독서 시간에 앞서 만난 한정란 교감은 "교직 생활 26년째인데 올해 풍산초등학교에 와서 학부모님들이 자발적으로 꾸려 가시는 독서 모임을 처음 봤다"면서 "(학생이) 졸업한 학부모님께서도 계속 참여하시고, 바쁘신데도 매주 여섯 분씩 조를 구성해서 오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풍산초에서) 근무한 지 4년 반 됐다"는 이예인 3학년 담임교사는 "학교에서 학부모님들께 별로 해 드리는 것도 없는데 한 주도 빠짐없이 여섯 분씩 꼬박꼬박 참여하고 계신다"면서 "아이들이 항상 독서읽기를 듣는 게 습관이 돼 있다 보니까, 아이들에게 15분은 정말 긴 시간임에도 저학년 학생들조차 집중해서 잘 듣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이어 "훈련이 잘 돼 있어 어디 행사 같은 데를 가서 '애들아 이제 앉아. 얘기해 줄게' 하면 딱 집중하는 게 다른 학교 학생들과 다르다"면서 "그럴 때면 꾸준히 독서 지도한 효과가 참 좋구나, 실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저는 풍산초 어린이 작가입니다"
학교 도서관에는 작년에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펴낸 동화책이 진열돼 있었다. <가림이의 이야기>, <저 행성으로>, <나쁜 벌> 등의 동화작품에는 '글ㆍ그림 강동우' 등 학생 이름이 쓰여 있다. <나쁜 벌>을 쓰고 그린 심동민 학생의 '소개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저는 풍산초 3학년 어린이 작가 심동민입니다. 사람들이 착해지면 좋을 것 같아서 이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나쁜 벌'이 착해지는 내용입니다. 엄마와 착한 벌은 나쁜 벌이 착해지기를 바랐습니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엄마 말씀 잘 듣고, 형, 누나 말도 잘 들으세요. 그리고 착하게 지내세요."
책 표지 안쪽에는 저작권 표시가 돼 있다.
"이 책의 저작권은 지은이 심동민과 풍산초등학교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이 교사는 학생들 책을 한 권 한 권 보여주며 내용을 설명했다.
"학원에 가야 되고 집에 가면 맨날 엄마가 잔소리하시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거예요. 하하하. 이 책은 더 행복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 그런 내용이거든요. 또 이 책을 쓴 학생은 수줍음이 굉장히 많은 아이인데, 자기 이야기를 쓴 거예요. 여기 3학년 학생 책은 판타지, 책들에 특성들이 다 나타나더라고요. '작가'라는 의미를 부여하니까 아이들이 더 흥미를 가지더라고요."
이 교사는 학생 작가를 바라보는 뿌듯함을 계속해서 표현했다.
"교내 전시에 그치는 게 아니고, 지역의 미술관을 활용해서 동화책 전시를 한다는 게 아이들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책 읽어라', 습관적으로 되게 많이 듣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학생들이 동화책을 만드는 걸 계기로 직접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책 읽기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어요. 학부모님들이 책 읽어주시면서 커다란 발판을 깔아주셨어요."
학교 곳곳에 독서 친화 환경 조성
도서관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은 독서 친화적이었다. 계단 부근 빈 공간에는 '짬짬이 도서관'을 둬서 학생들이 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복도 끝 공간은 친환경 나무 소재로 작업대를 만들어 그림 작업실로 꾸며 쾌적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동화책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때마침 학생들이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이 교사가 "누가 자기 동화책 이야기 해 볼래요?"라고 묻자, 주하정(4학년) 학생이 직접 그린 그림을 넘기며 설명했다.
"주인공 '발랄이'는 별명입니다. 발랄이가 임무를 받고 죽전마을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임무는 당산에 있는 느티나무를 찾는 것이고, 두 번째 임무는 마을 경로당을 찾는 것이고, 세 번째 임무는 마을 회관을 찾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저수지에서 낚시하시는 아저씨를 찾는 거예요. 죽전마을은 대나무가 많이 나오는 곳입니다."
강윤성(4학년) 학생은 동화책을 만드는 데에 당찬 의미를 부여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지만, 그때 기쁨과 자신감을 얻고 책을 두 번이나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를 소중히 다루고 국민들을 소중하게 대하자, 그런 메시지를 전달받았으면 합니다. 내년에도 또 만들고 싶어요."
이 교사는 "학생들이 올해 6월부터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등장인물 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면서 "학생들이 만든 동화책은 11월 9일 순창읍 옥천골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독서 모임 참여, 선택이었네"
독서 읽어주기를 마친 학부모들과 도서관에 마주 앉았다. 올해 새내기 1년 차라는 박미선 학부모(1학년 이승준 학생 모친)는 유쾌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풍산초병설유치원 다닐 때 유치원 선생님이 초등학교 학부모 독서 지도 모임이 있는데 어머님이 도와주셔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학부모는 다 해야 되는 의무인 줄 알았어요. 학교에 연락을 드렸더니 선택이었어요. 근데 활동하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엄마들이 아이 키우며 친구들 만나기도 쉽지 않잖아요? 언니도 생기고 동생도 생기고 좋더라고요."
독서 모임 회장을 맡은, 올해 2년차 박재란 학부모는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년에 독서 모임 들어올 때 재학생 학부모는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다른 분들은 전부 졸업생 엄마들이었어요. 사실, 저는 할머니예요. 손녀는 초등학교(임진주 2학년)에, 손자(임진경)는 유치원에 다녀요. 선배님들이 너무 잘 이끌어주셔서 정말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