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은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가 낯선 사람이 오면 짖기 때문에 충분히 안전하다며 방범창 설치를 거부했다.
이희훈
- 여성 1인 가구로서의 경험을 들려주신 다면요?
"처음으로 독립을 하는 데다 부모님 없이 계약을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집수리와 관련해 임대인에게 요구할 사항이 있으면, 무조건 계약 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봤을 때 안방과 주방에 베란다가 있었는데요. 양쪽 다 방범창이 없더라고요. 제가 사는 곳은 저층인 데다 주변에 담장이 있거든요. 저는 당연히 설치를 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계약 후에 임대인에게 방범창 이야기를 꺼내니 완강하게 반대를 하더라고요.
이유를 들어보니 구옥인 탓에 설치 과정에서 벽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사설 방범업체를 통해 방범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조차 반대하더라고요. 장비를 연결하느라 벽에 못을 박고 창문에 작은 구멍을 뚫어야 했거든요.
임대인은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가 낯선 사람이 오면 짖기 때문에 충분히 안전하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막막하고 서글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혼자 사는 여성의 불안함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임차인의 생명이나 안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본인들의 건물과 재산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느껴졌어요. 결국에는 제가 울고 불며 싸운 끝에 방범시설을 설치했는데, 덕분에 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안심하며 잘 수 있게 됐어요."
- 집에서 해충 문제도 겪으셨다고요.
"집 양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10개가 넘는데 단 한 곳도 방충망이 없었어요. 저는 당연히 설치를 해줄 거라 생각하고 계약 후에 이야기를 꺼냈죠. 그런데 임대인이 말하길, 문을 열고 싶으면 에어컨을 틀라는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었고, 나중에는 결국 설치를 해준다기에 기다렸는데 이삿날 집에 가보니까 창문 1곳에만 설치를 해놨더라고요.
그리고는 이사 당일 날 거실에서 새끼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어요. 임대인은 너무나 천연한 얼굴로 원래 이런 구옥에는 벌레가 사는 거라며 약을 치라고 말하더라고요. 이미 방범창 문제로 너무 크게 마찰을 빚은 터라 이번엔 제가 그냥 해결하고 싶어서 방충망 업체를 알아봤는데 20만 원을 요구하더라고요.
그냥 동네 철물점으로 가서 모기장과 지지대를 만 원 정도에 구입했어요. 철물점 사장님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직접 설치했죠. 2~3일 동안 베란다에 바들바들 매달린 채로 거의 울면서 설치했던 것 같아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서러웠는데 방충망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 이외에 임차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 돈은 아니지만 정당하게 돈을 내고 들어가는데도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 어려워요. 특히 중개사분들이 주로 임대인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더욱이 제가 집 계약 경험도 없고, 나이도 적은 데다 여자이니까 만만하게 생각하는 느낌이랄까요. 집을 보는 시간도 짧게는 10분, 길어야 30분 정도니까 놓치는 부분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중개사분들이 집을 소개하실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도 숨기거나 두루뭉술 넘어가는 식이었고요. 그에 따른 책임은 결국 임차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임대인은 당연히 책임져야 할 수리 문제도 청년들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중개사를 관리하거나 중개사고 및 불만에 대해 신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통로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 세입자로 사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위축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임대인이나 중개사를 상대할 때 위축되고 휘둘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의 없이 싸우라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서 끙끙대지 마시고, 이제는 청년들을 돕는 통로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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