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도서 카트를 끌고 책 읽기를 독려하는 통일 동아리 아이들이 대견할 따름이다.
서부원
기성세대가 어릴 적 목놓아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요즘 아이들에겐 생소한 노래다. '우리의 소원'이라는 말에 '통일'을 떠올리는 아이는, 장담하건대, 단 한 명도 없다. 통일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다양한 가치를 공유하면서 통일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아이들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이런 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당혹스럽지만, 통일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보면 찬반이 엇비슷하게 나온다. 그나마 아직 찬성이 한두 명이라도 더 많다는 점에 위안 삼을 뿐이다. 뒤집힐 날이 머지않은 것 같지만 말이다.
차라리 통일과 의미상 '사촌지간'인 평화와 공존, 생명 등을 앞세워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게 낫다. 통일이라는 단어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야 한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공존을 모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통일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통일 교육은 공존을 위한 평화 교육이며, 반전을 넘어 생명 교육이라는 걸 일깨워주어야 한다. '평화통일'이라는 명명도 평화로운 통일이라는 뜻이라기보다 평화가 곧 통일이라는 '동어 반복'임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과거 냉전 시대에나 어울리는 낡은 용어일지도 모른다.
통일이 지닌 의미가 넓어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통일 교육은 일회성 행사나 교과 수업 시간에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학교생활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되, 무엇보다 지속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한 자극이 중요하다.
통일 관련 책들을 모으다
그런 고민 끝에 시작한 게 '찾아가는 통일 도서관' 프로젝트다. 우선 도서 카트 석 대를 사무용품 업체로부터 임대하고 통일 관련 도서를 동네 서점의 협조를 얻어 구매했다. 학년의 교실이 두 개 층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카트 한 대만으로는 효율적인 운영이 불가능했다.
도서를 선정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당장 북한을 소개하는 책이 많지 않은 데다, 있어도 초등학생용이거나 논문 모음집 같은 전문 서적이어서 비치하기가 적절치 않았다. 서점에서조차 프로젝트에 대해선 십분 공감하면서도 선뜻 추천할 만한 책이 없다며 난감해했다.
북한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는 책은 죄다 그러모았고, 6.25 전쟁과 분단을 주제로 한 것도 빼놓지 않았다. 나아가 일제강점기를 포함해 현대사 관련 도서도 샀고, 통일교육원이 발간한 책들도 챙겼다. 부산 인디고 서원에서 간행한 비매품 책까지 통사정해서 구해 카트를 채웠다.
책마다 라벨을 붙이고 카트에 나눠 싣고 드디어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데면데면하던 아이들도 어느덧 매일 아침 카트를 끄는 친구들에게 고생한다는 말을 건넬 정도로 익숙해졌다. 책을 빌리는 수가 학급당 서너 명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동아리 아이들의 의욕만큼은 대단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여기서도 '편식'이 문제다. 아이들이 빌려 읽는 건 대개 웹툰을 엮어 만든 만화책이다. 아이들과 몇몇 동료 교사로부터 추천을 받아 산 건데, 앞다퉈 빌려 가는 통에 카트에 놓일 틈이 없다. 부러 찾아와 언제 빌려 볼 수 있느냐고 묻는 아이도 있다.
문제는 만화책만 찾는다는 점이다. 같은 날 산 책인데도, 만화책들은 모서리가 헤진 반면, 아예 펼쳐본 흔적이 없는 책도 여럿이다. 대개 두꺼운 데다 글자가 작고, 사진이나 그림이 적은 책들이다. 한 아이는 스마트폰을 몸의 일부로 여기는 영상 세대에게 만화책은 종이책에 대한 '수용 한계선'이라고 눙쳤다.
10시간 수업보다 효과적인, 스스로 읽는 책 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