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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막사발과 찻잔은 일본 전국시대에 성 하나와 맞바꿀 만큼 귀한 문화재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찻잔을 지방 영주(다이묘)에게 주며 군신의 징표로 삼았다. 쿠데타로 노부나가는 죽고, 곧바로 정권을 탈취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막사발 정치를 계속 이어갔다. 히데요시는 찻잔으로 정적을 회유하거나 인재를 얻기 위해 상으로 내렸다.
다이묘들은 전쟁 중에도 조선 막사발을 품고 다니면서 술을 따라 마셨을 정도로 귀중히 여겼다. 히데요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의 많은 옹기장이를 일본으로 잡아 갔다. 도공을 가장 많이 끌고 간 지역은 사쓰마, 초슈번이었으며 도재기공을 통해 불가마와 제철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조선 원류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되어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배에 실을 때 파손을 막기 위해 목판으로 대량생산한 풍속화(우키요에)로 감쌌는데, 이것이 당대 유럽 예술가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브 탕기,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에밀 졸라, 에두아르 마네 등이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는다. 사실 우키요에의 기원도 신윤복과 김홍도의 산수화가 그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태동한 대중예술의 큰 흐름에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히데요시가 죽고 나서 전국시대를 끝내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고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에도 막부를 연다. 사쓰마와 초슈번은 이 교전에서 패하여 지배층에서 떨어져 나가지만, 19세기에 들어와 연합(사쵸 동맹)하여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본 근대화의 물꼬를 트니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역사는 흘러가며 쵸슈번 출신의 이토 히로부미를 낳고 현대에 이르러 아베 총리가 나왔다. 오시마 요시마사는 아베 신조의 고조부, 명성왕후를 시해 한 이노우에 가오루도 쵸슈번 태생이다. 전범들을 모아놓은 야스쿠니 신사도 쵸슈번이 세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발전된 문명이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어내었으니 그 시작이 바로 도자기였다. 당시의 도예품은 지금의 반도체와 같이 최첨단의 기술이었다.
▲ 조선 막사발의 원류 큰호리병벌의 집짓기 ⓒ 이상헌
첨단의 옹기장이 큰호리병벌
곤충 세상에도 눈부신 도예가가 있으니 흙으로 항아리 모양의 벌집을 만드는 호리병벌 종류다. 배의 생김새까지 옹기를 연상시켜서 영명으로도 옹기말벌(potter wasp)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큰호리병벌은 달걀만 한 벌집을 만드는데 이 속은 여러 개의 방으로 칸막이가 쳐져 있다. 어미는 각 육아방마다 마취시킨 자나방 애벌레를 잡아다 넣고 알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