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부부 무덤 앞에서 묵념을 드리다.
이승렬
우리 속담에 "시어머니가 오래 살자니까 며느리가 방아 동티에 죽는 걸 본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사람이 오래 살게 되면 '별 망측한 꼴도 보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내가 오래 산 탓인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거의 매일 질병본부나 강원도청, 원주시청으로부터 안전안내 문자를 받고 있다.
그 문자 요지는 타 지역 방문 자제, 지인 만남 자제 등 코로나 예방을 위한 안전유의사항들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2년째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했는데, 이런 안전 유의사항이 거의 매일 반복되니까 이즈음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하다.
올해 초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 갔다가 종로 2가 지하도를 지나가는데 대부분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어 마치 전시를 방불케 했다. 지난 일요일 원주시내 중앙시장을 갔더니 마침 상가가 노는 날 탓에다가 방문 및 만남 자제 권고 때문인지 거리도, 상가도 한산한 게 활기를 잃고 있었다. 어디 원주만 그러하겠는가. 아마도 이즈음은 지구촌 곳곳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길었다. 게다가 모두들 마음 놓고 피서 여행도 못한 처지라 더욱 힘든 여름이었을 것이다. 8월 18일은 김대중 대통령 12주기 기일로 온라인 평화 추도식으로 대체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명색이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상임고문으로 그냥 있기 송구스러워 국립현충원에 참배하기로 했다.
아침 옷장에서 춘추용 검은 정장을 찾아 입었는데 주머니에서 뜻밖에도 돈이 나왔다. 웬 떡이냐고 세어보니 삼만 원이었다. 분명 내 돈일 테지만 잊어버린,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라 꼭 횡재한 기분이었다. 열차 시간이 잘 맞지 않고, 교통여건 상 강남고속터미널이 편리할 것 같아 평소와는 달리 고속버스를 탔다.
하필이면 나는 이즈음은 올 가을에 나올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었다. 오가는 길에 차 내에서 보고자 교정지를 가방에 챙기고 갔다. 버스에 오른 뒤 40여 쪽을 교정보는 새 강남터미널에 도착, 지하철을 환승한 끝에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이르렀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여유 있게 출발했다.
그런데 그날은 비가 질금질금 내린 탓으로 시내버스도, 고속버스도, 평소보다 늦기에 시간이 빠듯했다. 다행히 정문에서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고 오신 조순열 이사장님을 만나 편승한 덕에 다행히 제 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