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공동취재사진
첫째, 보호출산제가 보호하는 여성의 권리는 오로지 '자녀 출산을 숨길 권리'뿐이다.
보호출산제를 발의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독일에도 비슷한 제도(신뢰출산제)가 있다는 이유로 한국도 산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보호출산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주장은 전제가 틀렸다. 독일에 비슷한 제도가 있는 것은 맞지만, 독일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상황은 한국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상황과 전혀 같지 않다.
구체적으로, 독일은 모성보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한국에 비해 월등히 두텁다. 독일에서 산모는 임신·출산과 관련한 의료 서비스를 전부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의료서비스뿐이 아니다. 출산과 돌봄으로 여성이 경력단절 되지 않도록 다양한 모성보호 정책이 1952년 이후 꾸준히 확대 중이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이 의무화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 한 명 당 높은 양육 수당을 받는다. 또한, 1992년 제정된 임신갈등법(정식 명칭은 '임신갈등 회피와 극복을 위한 법률')에 따라 전국의 1000개 넘게 존재하는 상담소에서 여성이 성·피임·가족계획뿐 아니라 임신중절을 상담하고 지원받을 수 있으며, 이 임신갈등법이 제정되고 나서도 20여 년이 지난 2014년에서야 신뢰출산제가 도입되었다.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한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호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생각해보라. 계획 없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출산 후 아무도 몰래 입양 보내는 것'만이 그녀가 가진 권리의 전부가 아니다. 외부의 강요 없이 스스로 임신하고 출산을 결정하는 권리, 죄책감 없이 안전하게 임신 중절을 선택할 권리, 친생부에게 자녀를 인지시키고 양육의 부담을 나눌 권리, 출산 후에도 그녀의 사회적 지위가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권리 또한 그녀가 누려야 할 권리다. 독일이 자국의 신뢰출산제 도입 이전에 충분히 선행한 노력은 따를 생각 없이 왜 보호출산제만 따라야 하는가?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에게 독일과 같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낳기만 해. 아무도 모르게 입양 보내줄게"를 말하는 보호출산제가 과연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일까?
보호출산제는 분명한 퇴행이다
둘째, 보호출산제가 '보호'하는 아동의 권리는, '친생부모와 손쉽게 헤어질 권리'뿐이다.
보호출산제는 임신한 여성이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양육 포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은 '지체 없이' 입양 절차에 들어가도록 한다. 이는 2011년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 당시 도입된 입양숙려제(산모가 입양을 신중히 결정할 수 있도록 출산 후 7일이 지나야 입양 동의를 할 수 있다는 제도)의 취지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 국제아동권리협약의 아동 최상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을 상당히 침해하므로, 분명한 퇴행이다.
어떤 이는 산모와 아동을 바로 분리시키는 것은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열악한 상태에서 아동이 '자격 없는' 친생 부모와 같이 있다가 무슨 변을 당하느니, 지자체의 보호 아래서 입양 대기 아동이 되는 것이 훨씬 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해외입양인 사례를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아야 한다. 이들은 뿌리로부터 단절된 삶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증언해왔다.
일부 입양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덧붙인 감정적 호소가 아니다. 많은 아동권리 선진국가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아동 최상의 이익을 위해 아동이 원가정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국제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원칙적으로 친생부모에게서 양육 받을 권리가 있으며(7조), 가족과 분리되는 결정은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나 방임 등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요청된다(9조 1항). 또한 부모한테서 분리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동에게는 부모 한 명 또는 부모 모두를 정기적으로 만날 권리가 있다(9조 3항). 보호출산제는 이 모든 원칙을 배반한다.
함께 양육할 사람이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이 당장 아이 키우기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양육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인하므로, 조건적이고 일시적이다. 여건이 개선되면 그 마음 또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보호출산제는 이같이 조건적이고 일시적인 이유를 영구적인 '부모 자격 없음'으로 치환한다. 묻는다.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에게 그 즉시 친권이 중지되어 부모와 영구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결정적 사유가 있는가? 그것은 아동의 이익을 최대화하는가?
여성의 임신·출산·양육을 국가가 끌어안아야
글을 마치며 또 하나의 우려를 덧붙인다. 보호출산제가 불러올 결과에 관한 것이다. 나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우리 사회의 '더 가난하고, 더 사회적 지위가 낮고, 더 취약한' 여성의 아동이 입양 대상이 되어 해외로 송출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불완전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어려워하는 외국인 체류자, 북한이탈주민, 성매매피해여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 청소년 미혼모들이 보호출산제를 통해 입양 대상 아동의 주 공급자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해당 아동의 입양부모를 국내에서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외 입양이 지속될 것이다.
학대와 체벌의 경계가 모호했던 부모의 징계권이 민법에서 삭제된 것이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명백한 아동 학대의 현장에서도 자녀와 부모를 분리시키는 일에 머뭇거리던 국가가,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에게만은 유독 쉽게 친권을 포기시키고, 공인된 방법으로(보호출산제로) 아이를 데려갈 수 있도록 한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가난한 여성의 아동이 손쉬운 입양 대상이 되는 현실이 정의로운가?
출생신고제를 개편하여 자동으로 출생을 통보하는 제도 변화는 환영할 만하지만, 이와 연계되어 성급히 추진되는 보호출산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동과 여성의 권리 측면에서 '출산한 사실을 숨겨', '안전하게 아동을 유기하고', '입양보내는' 제도보다 더 나은 제도를 설정할 수 있다.
가정위탁이든 소규모 그룹홈이든, 친권을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은 채 국가가 아동을 임시보호하다가 원가정의 역량이 강화되면, 원가정에서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도 가능하며, 독일의 사례처럼 모성보호 정책이 자리를 잡은 뒤 익명출산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육 포기를 전제한 보호출산제가 아니며, 여성의 임신출산양육갈등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에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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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제 유감... '출산을 숨길 권리'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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